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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제사주재권

Posted November. 22, 200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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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나 친척 사이에 조상에 대한 제사()만큼 말 많고 탈 많은 일도 드물다. 제사를 모시는 것은 장남의 운명이라 쳐도 제사 방식과 제상() 준비 등에 대한 의견만도 이만저만 분분한 게 아니다. 형제간에 분쟁이 생겨 얼굴을 영영 안 보고 사는 경우도 있다. 제사 주재권은 권리이자 멍에다. 장남은 신랑감으로 인기가 없는 게 변함없는 세태다. 몇 대 종손이라는 것도 자랑거리가 못된다. 부모와 조상을 함께 모셔야 하는 경우는 최악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이복 형제간에 아버지 제사를 서로 모시겠다고 법정싸움(유체 인도 소송)이 붙어 대법원에서 승패를 가렸다. 대법원은 대법관 전원이 재판에 참여하는 전원합의체를 구성해 격론을 벌여야 했다. 그 결과 상속인들의 협의를 최우선으로 하되, 합의가 안 되면 적서()를 불문하고 장남이, 장남이 없으면 장손자가, 아들이 없으면 장녀가 맡아야 한다고 판결했다. 소송은 결국 본처 소생의 장남이 이겼다. 그러나 이 결론에 대법관 13명 중 6명은 반대했다.

기존 대법원 판결(판례)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통상 종손이 제사 주재자가 된다는 것이었다. 이번 판결은 판례를 바꾼 것이다. 대법원에선 좀처럼 드문 공개변론까지 열어 학자들의 의견을 듣기도 했지만 사회상의 변화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그럼에도 적서와 남녀의 평등원칙을 제사의 영역으로까지 넓혔다는 의미가 있다. 현행 민법에는 제사에 필요한 땅과 족보, 제구()의 소유권은 제사를 주재하는 자가 승계한다고만 돼 있을 뿐, 제사 주재자에 대한 규정이 없다. 이번 소송은 이 때문에 생긴 다툼이다.

반대 의견을 낸 대법관들은 기존 판례와 사실상 별 차이가 없다고 지적했다. 일부 대법관은 합의가 되지 않을 경우 상속인의 다수결로 제사 주재자를 뽑는 방법을 제시하기도 했다. 민주주의 원칙을 도입하자는 뜻일 게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제사에 시달려온 많은 장남과 맏며느리들은 두 손 들고 환영할지 모른다. 긍정적 측면도 없지 않겠지만 일가친척을 끈끈이 묶어주던 전통적인 가계()와 가풍(), 미풍양속을 잃게 되지는 않을까.

육 정 수 논설위원 soo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