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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수능 변별력의 정치학

Posted November. 15, 2008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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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이맘때 전국의 고3 수험생과 학부모들의 마음을 졸이게 하는 연례행사가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시험)이다. 한 문제 더 맞거나 틀리는데 따라 희비가 엇갈린다. 수능이 사교육을 많이 받은 학생들에게 유리하기 때문에 학력()을 제대로 검증하는 시험이 될 수 없다는 비판론도 거세다. 그러나 대학들이 여전히 내신보다 수능 성적을 더 신뢰한다. 현재로선 수능보다 나은 학력측정 방법이 없다. 수능은 고교 3년 동안 내신이 좋지 않았던 학생이 역전을 할 수 있는 수단이기도 하다.

2009학년도 수능시험이 지난해보다 어렵게 출제됐다. 가채점 결과 수리 가형의 경우 상위 4%에 해당하는 1등급의 커트라인이 지난해 98점(100점 만점)에서 20점 가까이 떨어질 것 같다. 쉬운 수능이 계속됐던 최근 몇 년과는 달리 앞으로는 어려운 수능이 예고되고 있다. 수능의 변별력이 커지면 상위권 학생들 사이에 점수가 벌어져 실력 차이가 확연히 드러나게 된다. 열심히 공부한 학생들이 원하는 대학에 합격할 확률이 커지는 것이다.

노무현 정권은 상위권 학생의 학력 경쟁을 억제하는 방향으로 수능시험을 운영했다. 2006학년도 수능에서는 언어 영역 만점자가 1만 명을 넘어 실수 안하기 경쟁으로 전락했다. 2008학년도 입시에서는 수능 비중을 낮추려고 점수 표기를 없애는 등급제를 도입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해마다 어렵게 내지 않겠다고 공언해 수험생들에게 쉬운 수능이 될 거라는 메시지를 계속 전하는가 하면 EBS 수능강의 내용이 상당수 그대로 출제됐다.

중국 같은 사회주의 국가도 상위권 학생들을 경쟁시켜 최우수 인재 발굴과 육성을 꾀한다. 당장 힘들더라도 경쟁을 시켜 세계무대에서 이길 수 있는 인재를 기르는 것이 국가의 임무요 생존전략이 돼야 한다. 노 정권은 이를 포기했던 것이나 다름없다. 수능이 변별력을 갖춰야만 열심히 노력한 학생이 보상 받을 수 있다. 내신이 불신받는 상황에서 수능시험의 변별력마저 흐려지면 로또입시로 변질돼 대학들이 우수학생을 선발하기 어렵다. 정권교체로 수능의 난도()가 높아진 현상을 두고 수능 변별력의 정치학이라고 이름 붙일 만하다.

홍 찬 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