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DJ) 전 대통령은 정치 지도자의 덕목을 얘기할 때 서생()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을 강조해 왔다. 정치 지도자는 책 읽는 서생처럼 꼬장꼬장한 명분과 시장 상인 같은 현실감각을 겸비해야 한다는 말이다. 정치에서 이상과 현실의 조화를 중시한 퍽 인상적인 비유다. 그러나 DJ가 서생의 문제의식에 방점()을 찍어 그런 말을 꺼낸 적은 별로 없다. 대부분의 경우 상인의 현실감각에 무게가 실렸다.
지금 DJ의 모습도 그렇다. 그는 그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범여권은 딴 생각 하지 말고 대선에 올인해야 한다. 정당 단일화가 되면 좋지만 그게 어려우면 문국현 씨까지 포함해서 모두 다 연합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후보 단일화 방법은 국민이 누구를 선호하는지 여론조사를 하면 된다고 했다.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당의 지분 50 대 50 합당 합의에 대해 신당 쪽에서 밑지는 장사라는 불만이 터져 나오자 지금 지분 따질 때가 아니다며 DJ가 직접 교통정리에 나선 것이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가게 주인의 불호령에 가깝다. 종업원들(신당과 민주당)이 큰 장사(대선)는 뒷전이고, 작은 장사(내년 총선 지분)에만 정신이 팔린 듯한 모습을 보이자 성난 주인이 호통을 치는 격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50 대 50의 합의 이면엔 DJ의 영원한 비서실장으로 불리는 권노갑 씨의 역할도 적지 않았다는 점이다. 권 씨는 신당의 옛 DJ계() 인사들에게 50년 정통 야당인 민주당의 이름값을 쳐 줘야 되지 않겠느냐고 설득했다는 후문이다. 직계들까지도 이처럼 지분에만 관심이 있으니 DJ로서는 답답했을 것이다.
DJ는 이 인터뷰에서 이회창 씨가 따로 나왔지만 여전히 야당이 유리하나, 과거에 나를 당선시킨 사람, 노무현 대통령을 당선시킨 사람들을 결집시킬 수 있으면 해 볼 만하다고 했다. 결국 호남표 장사를 하겠다는 말이다. 서생의 문제의식은 간 데 없고, 상인의 현실감각만 번뜩인다. 오히려 호남표로는 안 된다는 노무현 대통령이 더 서생답다.
김 창 혁 논설위원 chang@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