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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좋은일 한거야 하지만 우린

Posted September. 10, 2005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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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미(38여서울 강동구 등촌동) 씨는 요즘 하루하루가 지옥 같다.

평소 남편이 귀가하던 오후 10시경만 되면 대문을 쳐다본다. 남편이 문을 열고 들어올 것만 같기 때문이다. 딸들도 이 시간만 되면 신경이 예민해진다.

내가 크면 우리 아빠 죽인 애들 가만두지 않을 거야.

큰딸 우희(12) 양은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소리치곤 한다.

아빠가 좋은 일 한 거야라고 말하는 이 씨의 목소리엔 힘이 없다. 둘째 딸 현정(10) 양은 엄마와 언니 눈치만 살핀다.

솔직히 저도 그 아이들이 원망스러워요. 왜 하필 제가 그 광경을 봤는지. 마지막으로 봤던 남편의 모습이 손에 잡힐 듯 생생한데.

이 씨는 캠퍼스 커플인 신명철(42) 씨와 4년 열애 끝에 1992년 결혼했다. 2년 전 섬유업체를 차린 신 씨는 불경기 속에서도 제법 일감이 있어 올 여름휴가까지 포기했다.

휴가를 못 가 가족들에게 미안했던 신 씨는 지난달 14일 광복절 연휴에 아내와 딸들을 데리고 강원 홍천군 수타사 계곡을 찾았다. 신 씨 부부는 자매가 물놀이하는 것을 흐뭇하게 바라보다 계곡 상류 쪽으로 올라갔다.

딸들 나이 또래의 여자아이 2명이 급류에 휘말려 떠내려 오고 있었다. 이를 먼저 본 부인 이 씨가 소리쳤다. 저러다 큰일 나겠어!

신 씨는 곧장 물속으로 뛰어들어 아이들을 계곡 밖으로 밀어냈다. 하지만 자신은 물살에 휩쓸려 수심이 깊은 곳까지 떠내려갔다. 가슴을 졸이며 지켜보던 이 씨는 남편이 물 위로 떠오르자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신 씨는 다시 물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결국 불과 5분도 안되는 사이에 한 가정이 무너져 내렸다.

사람들이 정말 무심하더라고요. 애들 아빠가 죽어가는 걸 보면서 아무도 도와주질 않았으니. 계곡 주변엔 수백 명의 행락객이 있었다.

전업주부였던 이 씨는 당장 먹고살 일이 막막해 며칠 전 남편의 승용차를 팔았다. 앞으로 일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막막하기만 하다.

이 씨는 당장 1주일 앞으로 다가온 추석이 걱정이다. 아직 남편이 숨진 사실을 시어머니(72전북 정읍시)에게 말하지 못했기 때문. 3남 2녀의 장남인 남편은 말 그대로 집안의 기둥이었다.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데다 혈압까지 높은 시어머니에겐 남편이 출장을 갔다고 둘러댈 생각이다.

보건복지부는 신 씨를 의사자()로 인정하기 위한 절차를 밟고 있다. 의사자로 인정되면 1억7000여만 원의 보상금과 의료비, 교육비 등을 지원받는다.

하지만 8일 기자를 만난 이 씨는 남편의 빈자리를 무엇으로 채울 수 있느냐며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한편 2000년 이후 남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해 의사자로 인정받은 사람은 모두 114명이다.



이재명 egij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