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듣니? 난 본다!

#29일 낮 12시 56분. 서울 여의도동 MBC 방송센터 7층 라디오 스튜디오. 정선희의 정오의 희망곡(낮 122시) 생방송으로 진행 중.

DJ 정선희는 음악이 나가는 동안 머리핀을 뺐다 꽂았다를 반복한다. 스태프 한 명이 들어와 스튜디오 안 컴퓨터로 홈페이지 화면에 뜬 청취자 메시지를 보며 서로 웃는다.

#29일 낮 12시 58분. 2부 시작(오후 1시)이 가까워지자 이날의 게스트인 가수 이승철과 린이 스튜디오 입장. 시그널 음악이 나갈 때까지 정선희와 두 게스트는 수다에 열중한다. 이승철은 화장실에 다녀오려는 것인지 잠시 퇴장. 방송이 시작되자 흰색 셔츠 차림의 이승철은 신곡 열을 세어 보아요를 열창한다.

마치 스튜디오 창 밖에 서 있는 것 같지만 나는 지금 인터넷으로 정선희의 정오의 희망곡의 보는 라디오 메뉴를 통해 라디오를 보고 있다.

보는 라디오 시대

라디오를 들으며 사람들 누구나 갖는 궁금증. 음악이 나갈 동안 DJ는 뭘 할까?

이런 궁금증을 풀어 주는 라디오가 생겼다. 바로 보는 라디오다.

처음에는 평소처럼 화장을 전혀 하지 않은 채 스튜디오에 갔어요. 그랬더니 다들 좀 그려라고 하시더라고요.(웃음) 풀어진 일상을 훔쳐보는 데서 사람들이 만족하는 것 같아요.(정선희)

보는 라디오란 라디오 방송이 나가는 동안 인터넷을 통해 방송되고 있는 라디오 스튜디오를 생방송으로 보여 주는 신종 서비스. KBS, MBC, SBS 등 방송사들은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보는 라디오 코너를 정기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각 방송사는 매일 14개의 프로그램을 번갈아 가며 보는 라디오로 방송한다. 시청자 반응도 뜨거운 편. KBS 유열의 음악앨범(오전 911시)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오전에 라디오를 들으며 집안일을 했는데 보는 라디오를 이용하다 보니 집안일을 못 한다는 주부들의 항의가 있을 정도.

듣는 라디오의 아날로그 감성 VS 보는 라디오의 디지털적 친근감

보는 라디오 서비스가 확산되면서 라디오 스튜디오는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편한 옷차림으로 나타나 음악이 나가는 동안 엎드려 쉬거나 간식을 즐기던 DJ들은 불편함을 호소하기도 한다.

KBS 이금희의 가요 산책(오후 46시)의 진행자 이금희 씨는 보는 라디오를 하는 날이면 한번쯤 거울도 더 보고 신경 쓰게 된다고 말했다. 이 씨에 따르면 화장이나 옷차림에 좀 더 신경 쓰는 DJ도 있지만 대체로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매체인 라디오의 성격에 맞게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고 편안하게 행동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

한편에서는 보는 라디오 때문에 매체로서 라디오의 장점이 사라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윤석훈 KBS 2FM 팀장은 라디오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매체인데 스튜디오를 다 보여 주다 보니 라디오만의 신비감이나 아날로그적 감수성이 사라지는 것 같다고 걱정했다.

그러나 KBS 장옹림 PD는 처음에는 라디오까지 보여 줄 필요가 있을까 하고 회의적인 반응도 적지 않았지만 시행해 볼수록 청취자들이 라디오의 친밀감을 극대화하는 것 같아 오히려 라디오의 장점이 더 잘 살아난다고 말했다. 이 씨도 방송 도중 제가 커피를 마시면 언니, 뭐 먹어요라는 시청자의 글이 게시판에 바로 뜬다며 가족처럼 가까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아 보는 라디오에 대해 생각이 긍정적으로 변했다고 말했다.

김윤종 zoz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