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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왕 전쟁책임 침묵추모 생색만

Posted June. 28, 2005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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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히토() 일왕 부처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식민지였으며 연합군과 격전 끝에 7만5000여 명의 군인과 민간인이 숨진 미국령 사이판 섬을 27일 방문했다.

구 식민지를 일왕이 종전 후 위령 목적으로 방문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일왕 부처는 이날 저녁 현지에서 일본인 유족회, 전우회 회원 등과 간담회를 가졌다.

아키히토 일왕 부처는 사이판 방문 이틀째인 28일 일본 정부가 세운 중부태평양 전몰자비와 일본인 군인민간인이 자살한 절벽 등을 방문하고 희생자를 추모한다. 또 현지 주민 희생자 933명의 이름이 새겨진 마리아나 기념비와 미군을 위한 제2차 세계대전 위령비에도 헌화할 계획이다.

이와 관련해 사이판 현지 주민들은 아키히토 일왕 부처의 위령비 헌화가 양측의 상처를 어느 정도 치유해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일본인 관광객이 급증하고 일본과의 교역도 확대되고 있는 마당에 60년 전의 아픔을 과거사 차원에서 굳이 들춰낼 필요가 없다는 반응이다.

그러나 사이판에서 강제노동에 시달리거나 전란에 휩쓸려 숨진 한국인 희생자를 위한 사이판 한국인 위령비는 방문 대상에서 제외돼 국내용 행사란 한계를 드러냈다. 한국인 위령비는 일본 정부가 자국인 사망자들을 위해 세운 전몰자비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다.

이 같은 일정에서 알 수 있다시피 일왕의 이번 위령 순례는 일본 왕실(특히 쇼와 일왕)의 전쟁 책임에 관해 침묵한 채 전몰자 추모만 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종전 후 쇼와 일왕은 위령 목적의 해외 격전지 방문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1989년 왕위를 계승한 아키히토 일왕은 1992년 중국을 방문해 과거사에 유감을 표시한 이래 이오() 섬, 오키나와 등 격전지를 방문하며 전몰자를 추모해 왔다.

결국 자신의 책임에 대해서는 입을 닫은 채 경제력을 앞세워 과거 연고지에 영향력 확대를 꾀하는 이번 위령 순례는 주변국을 위무하는 것은 물론 일본 국내의 군국주의 기류(특히 최근의 전범 무죄론)를 잠재우지도 못하는 것일 뿐이다.

일본은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발발 후 사이판을 점령해 식민통치를 했다. 사탕수수 재배 등을 위해 2만여 명의 일본인을 이주시켰으며 한국인 노동자 1000여 명도 노역에 동원됐다. 1944년 6월 연합군이 상륙한 이후 전개된 한 달여간의 치열한 전투로 일본군 4만3000여 명과 미군 1만5000여 명 및 민간인 등 7만5000여 명이 숨졌다.



조헌주 hans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