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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빈자리 너무 크지만..

Posted May. 02, 2003 22:03   

가정의 달인 5월.

2월 대구지하철 방화 참사로 부모를 잃은 수미양 3남매와 3월 충남 천안초등학교 축구부 합숙소 화재로 아들을 잃은 김창호씨(40)의 경우는 가족 사랑의 의미를 더욱 강하게 되새기게 한다. 이들은 지금 아픔을 딛고 아름다운 재기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할머니, 다녀왔습니다!

지난달 30일 오후 경북 영천시 화남면 귀호리 황정자씨(63) 집. 자그마한 소녀 2명이 대문을 박차고 뛰어 들어와 할머니 황씨 품에 안겼다. 황씨의 주름진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지난해 1월 심장마비로 아버지가 사망한 뒤 올 2월 대구지하철 방화 참사로 어머니마저 잃고 할머니와 생활하고 있는 엄수미(8), 난영양(6), 동규군(5) 등 3남매. 이들은 밝고 씩씩한 모습이었다.

사고 후 두 달 동안 할머니는 농사일을 그만두고 아이들을 돌보는 데 전념했다. 엄마 생각으로 괴로워하지 않도록 항상 집을 비우지 않고 3남매를 돌봤다.

어머니가 살아있을 때와는 많은 것이 달라졌다. 부쩍 철이 든 첫째 수미는 더 이상 반찬투정을 하지 않는다. 숙제도 스스로 하고 자다가 동생들이 차버린 이불을 덮어 주기도 한다. 얼마 전부터는 동생들의 밥그릇 설거지까지 도맡아 하고 있다. 고집 센 둘째 난영이도 할머니의 말을 잘 따르는 편. 전에는 자신이 방을 어질러 놓곤 했지만 요즘은 동생 동규가 늘어놓은 장난감을 정돈할 정도로 달라졌다.

할머니 황씨의 눈에는 손자손녀들의 달라진 모습이 대견하면서도 한없이 안쓰럽게 보인다. 할머니에게 힘을 준 것은 3남매의 사연이 알려진 후 전국 각지에서 보내 온 편지들. 3남매를 훌륭히 키워 달라는 당부와 수미 힘내라는 격려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수미를 위해 책을 보내 준 중학생도 있었다.

현재 생활에 가장 큰 도움이 되는 것은 한국야쿠르트사가 보내주는 월 100만원. 황씨는 이 중 50만원은 생활비로 쓰고 나머지 50만원은 수미 3남매를 위해 적금을 넣고 있다고 말했다.

책을 좋아하는 수미의 장래 희망은 국어선생님. 난영이는 자신이 그린 그림을 자랑스레 보여주며 미술선생님이 되겠다며 수줍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