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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타간 보험금 ‘수 조 원’…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14년 간 제자리

못 타간 보험금 ‘수 조 원’…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14년 간 제자리

Posted September. 20, 2023 09:30   

Updated September. 20, 2023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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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건강보험은 병원에서 진료만 받으면 보험금이 자동으로 청구된다. 하지만 4000만 명이 가입해 ‘제2의 건강보험’으로 불리는 실손의료보험 가입자들은 일일이 종이 서류를 챙겨야 한다. 병원에 직접 방문해 영수증과 진단서, 진료비 세부내역서 등을 뗀 뒤 보험사에 팩스나 우편으로 보내야 한다. 서류를 빠뜨려 병원을 다시 찾는 일도 많다. 모바일 앱도 있지만 종이 서류를 사진으로 찍어 전송하는 방식일 뿐이다. 스마트폰으로 모든 걸 하는 디지털시대에 종이 서류를 통한 보험금 청구가 연간 1억 건 이뤄지니 이런 낭비도 없다.

금융소비자연맹 등 소비자단체의 설문에 따르면 절차가 번거로워 보험금을 청구하지 않은 경험이 있는 사람이 절반에 가깝다. 2021년부터 올해까지 3년 간 가입자가 청구하지 않은 실손보험금은 8282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불편과 낭비를 막자고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법(보험업법 일부 개정안)’이 추진돼 왔지만 국회에서 표류하고 있다. 올해 6월 상임위원회 문턱을 넘었지만, 이번엔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제동이 걸렸다. 여야의 극한 정쟁 속에 해를 넘길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실손보험 청구를 간소화해달라는 요구는 오래전부터 꾸준히 제기됐다. 국가적 낭비가 심하다며 국민권익위원회가 개선을 권고한 게 벌써 2009년이다. 지난 대선 과정에선 여야 후보 모두 공약으로 내걸었다. 지난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진행한 국민 설문조사에선 새 정부가 가장 먼저 시행해야 할 생활밀착형 과제 1순위로 꼽혔다. 이런 상황에서 국회가 의료계 등의 눈치를 보며 법안 처리를 미루는 것은 심각한 직무 유기다.

의료계는 이 법이 의료정보 열람과 제공을 엄격히 제한하는 의료법 등과 충돌한다며 반대한다. 하지만 전산화를 해도 환자의 요청과 동의가 필요하고, 보건복지부와 법제처 등에서 문제가 없다고 해석하고 있다. 의료계는 민감한 개인정보 유출 가능성도 제기하지만 종이 서류를 전산문서로 바꾼다고 유출 우려가 커진다고 보긴 어렵다. 민간 보험사들의 영리 목적에 이용되지 않도록 중간 정보처리기관을 두고, 정보를 저장할 수 없도록 하는 보완책도 법안에 마련된 상태다.

14년 동안 국회가 입법을 모르쇠하면서 국민들의 호주머니에서 빠져나간 보험금이 단순 계산으로도 3조 원이 넘는다. 더 이상은 국민들의 불편과 손해를 내버려둬선 안 된다. 문제가 있으면 하위법령과 법 시행과정에서 보완하면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