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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km 괴물 커브로 161km 강속구 깼다

Posted August. 22, 2023 08:49   

Updated August. 22, 2023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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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속 90마일(약 145km)을 넘기는 공을 하나도 던지지 못했다. 하지만 상대 타자는 타이밍을 잡지 못해 삼진을 7개나 당했다. 느리게 날아오다 타석 앞에서 뚝 떨어지는 ‘아리랑 커브’가 제대로 위력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구단 공식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도 “폼 미쳤다”(기량이 물이 올랐다)는 최신 한국어 유행어로 투구 내용을 칭찬했다.

‘블루 몬스터’ 류현진(36·토론토)이 3경기 연속 무자책점 행진을 이어가며 2경기 연속 선발승을 거뒀다. 류현진은 21일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신시내티 방문경기에서 5이닝 동안 안타 4개, 볼넷 하나로 2점(비자책점)만 내주고 팀이 9-2로 앞선 6회초부터 마운드를 넘겼다. 토론토가 결국 10-3 승리를 거두면서 류현진이 승리투수로 이름을 올렸다. 류현진의 시즌 평균자책점은 1.89까지 떨어졌다.

류현진은 이날 △빠른 공 38개 △체인지업 18개 △커브 16개 △커터 11개 등 공을 총 83개 던졌다. 투구 수에는 여유가 있었지만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토미 존 수술)을 받고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데다 7점 차이로 앞서고 있어 토론토 코칭스태프는 서둘러 불펜진을 가동했다. 존 슈나이더 토론토 감독은 이날 류현진의 호투 비결로 ‘제구력’을 꼽으면서 “커브가 특히 좋았다. 체인지업과 섞어 쓴 타이밍도 절묘했다. 정말, 정말 잘 던졌다”고 말했다.

이날 류현진이 던진 커브 중 ‘백미’라고 할 수 있는 건 3회말 ‘괴물 신인’ 엘리 데라크루스(21) 타석에서 나왔다. 류현진은 속구와 체인지업을 번갈아 던져 볼 카운트 2스트라이크 2볼 상황을 만들었다. 그리고 시속 106km 슬로 커브를 결정구로 사용해 헛스윙 삼진으로 데라크루스를 요리했다. 데라크루스는 5회말 그다음 타석에서는 류현진의 커브를 지켜보다가 루킹 삼진을 당했다. MLB닷컴은 “류현진은 똑똑한 투구로 사람들의 탄성을 자아낸다. 특히 타자 심리를 누구보다 잘 읽기 때문에 어린 타자를 상대할 때 더 무섭다”고 평했다.

류현진도 경기 후 ‘오늘 커브에 몇 점을 주고 싶나’라는 질문을 받자 “100점 만점에 100점”이라며 “상대가 공격적으로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에 슬로 커브를 결정구로 사용했다”고 말했다. 류현진이 이날 던진 커브는 평균 32cm가 떨어졌다. ‘슬로 커브 명장’으로 손꼽히는 클레이턴 커쇼(35·LA 다저스)의 커브 낙폭이 25cm 정도다. 류현진이 문자 그대로 ‘폭포수 커브’를 던진 셈이다.

MLB에서 통산 355승(227패)을 거둔 그레그 매덕스(57)는 “위대한 투수를 만드는 건 팔이 아니라 두 귀 사이에 있는 ‘두뇌’라고 불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신시내티 선발 투수 헌터 그린(24)은 최고 시속 161km에 달하는 빠른 공을 던졌지만 3이닝 9실점(8자책점)하며 패전투수가 되고 말았다. 류현진의 다음번 ‘두뇌 피칭 쇼’ 무대는 27일 안방 클리블랜드전이 될 예정이다.


임보미 b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