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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젤’ 무대서 군무 이끈 강호현씨 “무용수의 꿈 이뤘죠”

‘지젤’ 무대서 군무 이끈 강호현씨 “무용수의 꿈 이뤘죠”

Posted March. 14, 2023 07:38   

Updated March. 14, 2023 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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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졸업 작품을 준비할 때 파트너 무용수를 도와 지젤 역을 맡았어요. 그땐 제가 파리오페라발레단의 무용수로 지젤 무대에 설 거라곤 상상조차 못했죠. 무용수로서 꿈을 이룬 것 같아요.”

354년 역사를 지닌 세계 최고(最古)이자 최정상 발레단인 파리오페라발레단(BOP) 소속 한국인 무용수 강호현(27)이 말했다. 그를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 서울에서 10일 만났다. 발레단에서 쉬제(솔리스트) 등급인 그는 8일부터 11일까지 열린 BOP 내한 공연 ‘지젤’ 무대에서 군무를 이끄는 역할을 맡았다. ‘지젤’은 BOP가 1841년 세계 초연한 작품으로, 2막에서 처녀 귀신 윌리들이 시시각각 대열을 바꾸며 추는 ‘윌리들의 군무’가 백미로 꼽힌다.

“윌리가 인간의 영혼인 만큼 공중에 떠다니는 듯한 느낌을 주기 위해 무용수의 동작은 최대한 가볍게 표현돼야 해요. 다리를 아주 빠르게 움직이면서도 상체는 공기를 감싸 안듯 부드럽게 표현하죠. 고난도 안무입니다.”

그는 쉬제로서 군무와 솔리스트 안무를 모두 익혀야 해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연습했다. 그는 “낮에는 밥 먹을 시간이 부족해 저녁에 두 끼를 먹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번 내한 공연에서 그는 BOP 소속 한국인 무용수 중 유일하게 무대에 올랐다. 강호현은 퇴단한 김용걸과 현재 에투알(수석무용수)인 박세은, 카드리유(군무단) 윤서후에 이어 BOP에 4번째 입단한 한국인 무용수다. 올 초 출산한 박세은은 이번 내한 무대에 서지 않았다.

“세은 언니의 출산이 임박한 시점에 ‘지젤’ 캐스팅이 발표됐어요. 발레단 내 한국인이자 에투알인 세은 언니는 큰 의지가 되는 존재예요. 어려움이 있을 때 조언을 구하기도 하고요. 이번 내한 공연을 앞두고선 언니가 잘 다녀오라는 문자를 보내줘 큰 힘이 됐습니다.”

세계 무대에서 쟁쟁한 무용수들과 경쟁하는 그에게 발레는 행복이자 삶의 일부다. 어릴 적 유난히 내성적인 성격 탓에 동네 스포츠센터에서 배운 발레가 마냥 좋았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본격적으로 다니기 시작한 발레 학원에선 거의 살다시피 했다. 이후 예원학교, 서울예고, 한국예술종합학교 등 발레리나로서 엘리트 코스를 거쳤지만, 실기 성적은 중위권에 그쳤다. 하지만 그저 춤추는 게 즐거웠다. 그는 “다른 친구들과 실력을 비교하기보다는 ‘나 자신이 과연 어디까지 해낼 수 있을까’만 생각하며 스스로에게 집중했다”며 “무용수의 최대 역량을 궁금해하는 BOP와 이 점에서 잘 맞았던 거 같다”고 했다.

2017년 발레단에 입단해 올해로 단원 7년차를 맞은 그는 지난해 경사가 겹쳤다. 쉬제로 승급했고, BOP의 드라마 발레 ‘마이얼링’에서 여주인공 마리베체라 역에 발탁됐다. 감성적인 연기와 안무로 프랑스 발레 팬들에게 눈도장을 찍으며 주목받았다.

“한국 관객분들께 아직 보여드리지 못한 BOP만의 레퍼토리가 정말 많아요. 다음번엔 그런 작품과 배역으로 돌아오고 싶습니다.”


이지윤기자 leemai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