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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 바이든,새 영부인상 제시할까

Posted August. 05, 2020 07:55   

Updated August. 05, 2020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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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5년 이혼소송 중이던 24세 미국 여대생이 33세 상원의원을 만났다. 남자는 3년 전 차사고로 부인과 딸을 잃었고 당시 차에 동승했던 6세, 5세 두 아들을 돌보는 것을 힘겨워 했다. 남의 아이를 키우는 것도, 일거수일투족이 노출되는 정치인 아내의 삶도 부담스러웠던 여자는 청혼을 4번 거절했고 다섯 번째 청혼에서야 받아들였다. 1977년 결혼한 그는 아직까지 현역인 남편을 내조하며 딸을 낳았고 교육학 석박사와 영문학 석사 등 학위 3개도 땄다. 조 바이든 미 민주당 대선후보의 부인 질 여사다.

 미 언론이 ‘바이든 박사(Dr. Biden)’로 표기하는 그는 정치인 배우자의 새 상(像)을 제시했다는 평을 얻고 있다. 2009년 남편이 부통령이 됐을 때 그는 유급 일자리를 가진 최초의 부통령 부인이란 타이틀을 얻었다. 남편이 상원의원 36년, 부통령 8년을 지낸 워싱턴 정계의 실력자였음에도 교사란 본인의 직업을 포기하지 않고 독립 생계를 유지한 결과였다.

 당시 30여 년간 공립 고등학교, 2년제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영작문 등을 가르친 그는 학생들이 “바이든 의원과 무슨 관계냐”고 물으면 줄곧 “친척”이라고 했다. 2007년 56세에 박사 학위를 딸 때도 논문에 미혼 시절 성을 앞세운 ‘제이컵스-바이든’이란 이름을 썼다. 부통령 부인이 되자 4년제 명문대에서 출강 요청이 빗발쳤지만 “커뮤니티 칼리지가 좋다”고 응하지 않았다.

 남편의 위상과 영향력을 감안할 때 세 아이를 키우며 직장생활과 학업을 병행한 그가 유무형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았다고 보긴 어렵다. 하지만 본인 의지 없이 남편 후광만으로 될 일도 아니다. 그는 공영라디오 NPR 인터뷰에서 “내 정체성은 교사이며 남편의 삶과 내 삶은 별개”라고 했다. 남편 또한 “취재진이 가득한 부통령 전용기에 탑승해서도 늘 시험 채점을 했다”며 아내의 독립성을 높이 평가했다.

 그간 동서양을 막론하고 권력자의 배우자로 각광받았던 유형은 ‘그림자 내조형’이다. 있는 듯 없는 듯 존재감 없이 지내니 구설에 오를 일도 없고 문제를 일으키지도 않는다. 부시가(家)의 안주인인 미국 영부인 바버라 부시와 로라 부시 여사,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남편 요아힘 자우어 박사 등이 대표적이다.

 정반대 지점에 힐러리 클린턴 전 미 국무장관이 있다. 그는 1993년 남편이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백악관 동관의 영부인 집무실을 남편 집무실이 있는 서관으로 옮겼다. 의료보험 개혁도 추진했다. 고용주가 피고용인을 위해 더 많은 돈을 부담해야 한다는 개혁안 취지에는 많은 이가 공감했지만 “선출직도, 의료 전문가도 아닌 영부인이 왜 설치느냐”며 여론의 십자포화를 맞았다. 결국 의회 통과에 실패했고 이때 형성된 ‘똑똑하지만 잘난 척하는 여자’ 이미지는 훗날 그의 대권 가도에 결정적 장애물로 작용한다.

 영부인은 물론 선출직이 아니다. 그렇다고 권력자 배우자의 영향력을 간과하는 것도 현실적이진 않다. ‘급’이 안 되면 모를까 역량과 의지가 있다면 뒤에서 베갯머리송사를 하게 놔두느니 공개 활동을 할 기회를 주는 편이 낫지 않을까. 실제 클린턴 전 장관의 의료 개혁안은 훗날 오바마케어의 뼈대가 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란 전대미문의 보건 위기까지 맞은 지금 이 법안이 나왔다면 훨씬 많은 지지를 얻었을 것이다.

 바이든 후보가 백악관 주인이 될지 알 수 없지만 그가 권좌에 오르면 질 여사가 전공을 살려 교육 양극화 해소에 기여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현재 미 교육사령탑인 베치 디보스 장관은 53억 달러(약 6조4000억 원)의 재산을 지닌 자산가이며 취임 전부터 교육 민영화를 강조해 논란을 빚었다. 또 코로나19 재확산 위험에도 주군의 뜻을 받들어 각 학교에 9월 정상 개학을 밀어붙이느라 여념이 없다.

 질 여사가 수십 년간 저소득층 공립학교에서 아이들과 부대끼면서 정치인 남편을 위한 표심 계산을 단 한 번도 안 했다면 거짓일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표심을 위해 그 오랜 세월 동안 교사 직업을 유지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이런 영부인이 미 교육 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족벌 정치의 좋은 예로 남을 수 있지 않을까. 최소한 클린턴 전 장관의 영부인 시절처럼 비전문가 논란은 등장하지 않을 것이다.


하정민 de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