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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1년, 과거 아닌 미래 향한 ‘적폐청산’으로

촛불 1년, 과거 아닌 미래 향한 ‘적폐청산’으로

Posted October. 28, 2017 09:17   

Updated October. 28, 2017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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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0월 29일 서울 청계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규탄하고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외쳤다. 주말마다 이어진 촛불집회의 시작이었다. 국회의 대통령 탄핵안 의결과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 그리고 조기 대선이 치러지기까지. 촛불집회 1주년을 맞아 오늘 광화문광장에선 기념집회가 열리고, 여의도에선 ‘촛불파티’도 열린다. 친박(친박근혜) 단체는 별도의 태극기집회를 열어 박 전 대통령 석방을 촉구할 예정이다.

 비선실세의 국정개입 보도로 촉발된 촛불집회는 시민의 자발적 참여로 정치적 변화를 이끌어냈다. 1700만 명으로 추산되는 시민들은 저마다 우리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열망을 촛불에 담아 새로운 대한민국의 미래를 꿈꿨다. 그 촛불이 변화를 이끌어낸 동력이 된 것은 철저한 평화집회였다는 데 있다. 일부 소란도 없지 않았지만 촛불집회는 시종 평화롭게 축제처럼 이뤄졌다. 그런 ‘광장민주주의’에 전 세계도 찬사를 보냈다.

 그런 촛불의 열망 속에 탄생한 문재인 정부도 어느덧 다음 달 10일로 출범 6개월을 맞는다. 5·9 대통령선거 승리와 함께 인수위원회도 없이 곧바로 출범한 새 정부는 ‘적폐청산을 통한 재조산하(再造山河·나라 다시 만들기)’를 최우선 국정과제로 추진하고 있다. 신설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아직 공석인 채 조각(組閣)도 마무리하지 못했지만 각 부처마다 적폐청산기구를 가동해 수많은 적폐를 찾아내고 반성문과 함께 과거와의 단절을 선언하고 있다.

 이런 적폐청산 드라이브에도 기대에 못 미친다는 일각의 비판은 여전하다. 하지만 적폐청산에 가속도가 붙으면서 조급증에 따른 탈선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국정과제가 온통 적폐청산으로 귀결되다보니 사회 곳곳에서 피로감을 호소하고 저항도 만만치 않게 나타나고 있다. 특히 적폐청산이 박근혜 정부를 넘어 이명박 정부까지 확대되면서 야당은 ‘정치보복’이라고 반발하며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로까지 번지는 등 정치권 갈등은 날로 격화되고 있다.

 역대 정부도 출범 때마다 과거청산을 통한 개혁을 추진했다. 늘 청산은 요란하기 마련이었다. 청산을 통한 개혁은 불가피하게 ‘과거 뒤지기’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도 예외는 아니다. 각 부처에서 쏟아지는 적폐청산엔 과거뿐 미래는 보이지 않는다. 정부는 ‘적폐청산 없이 미래도 없다’고 강조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적폐는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청산되는 것이지, 청산을 마치고 미래로 가는 단절된 과정이 아니다.

 그렇기에 적폐청산은 이제 미래를 내다보는 것이어야 한다. 역대 정부의 과거청산이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잇따르면서 급속히 동력을 잃고 표류했던 것도 과거 파헤치기에 급급했기 때문이다. 조급하게 밀어붙일 일도 아니다. 과거를 단죄하는 사법적 절차는 현 정부 임기 내에 마무리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이런 실패의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선 지난 6개월의 적폐청산 과정을 되돌아보고 올바른 원칙과 기준을 재점검할 때가 됐다.

 첫째, 청산의 목표는 어떤 인물이나 세력이 아니라 낡고 부패한 시스템, 즉 제도와 관행 이어야 한다. 하지만 특히 적폐청산이 과거를 파헤치고 특정 인물과 세력을 뒤져 단죄하는 것으로 변질돼선 안 된다. 정부 각 부처마다 검찰 수사까지 이어지는 과거 적폐들을 공개하고 있지만 제도적 개선 방안은 보이지 않는다. 잘못된 구조를 고치고 문화와 의식까지 바꾸는 구조적 종합적 청산진이 함께 나와야 한다. 그래야 과감하게 도려내되 생살에는 손상이 없는 적폐청산이 될 수 있다.

 둘째, 철저히 법과 절차에 따라야 한다. 대통령도 아닌 대통령비서실장이 부처에 적폐청산 기구를 구성하라는 공문까지 보낸 월권행위는 적폐청산을 시작부터 의심받게 만들었다. 국가정보원 개혁위원회 민간위원들이 비밀취급 인가도 없이 국정원 내부 비밀자료를 들여다본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런 법절차 무시가 적폐청산의 정당성을 훼손하고 결국 시간이 지나 다시 도려내야 할 적폐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셋째, 청산은 정치의 정상화를 통해 완성됨을 잊어선 안 된다. 촛불민심이 폭발한 것은 실종된 정치 때문이었다. 대통령이 불통의 무소불위 권력을 행사하고 국회가 이를 견제해내지 못한 데 대한 민심의 분노였다. 모든 적폐청산의 마무리는 국회에서 이뤄진다. 검찰 개혁을 위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와 검경 수사권 조정, 정치 개혁을 위한 헌법 개정과 선거제도 개혁 등 하나같이 국회를 통하지 않고서는 안 된다. 국회를 건너뛰는 직접민주주의의 확대가 아니라 협치(協治)를 통한 정치의 복원, 대의민주주의의 회복이 이뤄져야 한다.

 촛불정신을 토대로 적폐청산을 최우선 공약으로 내걸고 출범한 문재인 정부다. 역대 정부의 과거 청산이 늘 그랬듯 이번 적폐청산도 짧은 승자의 역사로 끝나선 안 된다. 청산의 결과는 진정 대한민국의 미래를 보여주는 청사진이어야 한다. 숱한 실패와 질곡 속에서도 70여 년의 축적된 민주주의 역사를 써온 대한민국이다. 그 역사에 적폐청산이 또 다른 실패로 기록돼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