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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의 땅을 우리품에

Posted March. 22, 2007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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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시베리아횡단열차(TSR)의 출발지인 블라디보스토크 철도역 대합실에는 중국인들로 북적댔다. 여행용 짐을 끌고 있던 한 중국인은 유창한 러시아어로 시베리아 이르쿠츠크에서 기차를 갈아타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중국인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4월까지 러시아 시장에서 외국인 소매상 비율을 40%로 제한한다는 법률이 나오면서 중국 상인들이 철수를 서두르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인의 대규모 진출, 일본 상품의 파상 공세, 러시아 당국의 견제로 러시아 극동 연해주는 한국 일본 중국 러시아 4국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물고 물리는 경제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현지에 진출한 한국 기업인들은 연해주에서 벌어지는 한중일러 4국 열전()은 이제부터라고 입을 모았다.

중국의 태평양 진출 열망=급성장한 중국이 태평양 항로를 뚫으려는 노력은 곳곳에서 엿보인다. 16일 러시아 하산역에서 10km 북쪽으로 떨어진 철로에는 중국 훈춘()으로 연결된 철로가 새로 놓인 현장이 목격됐다.

훈춘으로 갈라지는 철로 앞에는 간이역도 세워져 있다. 한반도종단철도(TKR)와 TSR 연결을 둘러싸고 러시아 한국 북한이 논란을 벌이는 동안 중국은 러시아와의 동맹관계를 TSR의 지선에 철도를 슬쩍 연결해 놓은 것이다. 중국은 이 철도를 이용해 러시아 자루비노 항까지 물자를 운반한 뒤 태평양 뱃길을 바로 이용하려는 계획이다.

이와 함께 중국은 동해로 나아갈 수 있는 육로 개척에 혈안이 돼 있다. 알로마 사칼로마 블라디보스토크뉴스 기자는 자루비노 항에서 훈춘으로 이어진 러중 양국을 잇는 도로 공사는 중국 정부가 돈을 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또 북한 나진항 이용권을 두고 러시아와 경쟁을 벌이고 있다. 하산 주민들은 나진항 연안지대를 조차한 중국이 북한에도 돈을 대주며 훈춘에서 나진항으로 이어진 도로를 닦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의 수륙양동 전략=16일 자루비노 항에서 북쪽으로 가는 도로에는 러시아 임시번호를 단 일제 중고 승용차가 줄지어 이동했다. 블라디보스토크 항에서 가까운 북한 음식점은 일본인이 인수해 일본 식당으로 바꾸어 놓았다.

일본 정부는 에너지 자원 확보를 위해 동시베리아 송유관 건설 사업에 투자하겠다는 의사를 여러 차례 밝혔다. 러시아 석유 전문가 미하일 바쿨레프 씨는 러시아 정부가 원유 공급을 보증할 경우 송유관 건설 사업비의 25%를 일본이 부담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연해주 주요 도시에서 일본인들은 드물었지만 일본 상품은 봇물이 터지듯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17일 블라디보스토크 시내의 연해주 주청사 앞에 설치된 대형 전광판에는 5분 간격으로 일본 전자제품 광고가 흘러 나왔다.

러시아의 통제 강화=석유 수출로 콧대가 높아진 러시아는 극동지역에서 외국에 대한 견제를 강화하고 고액 투자자를 우대하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러시아는 중국과는 동맹관계이지만 경제적으로는 중국 인력 쿼터제와 같은 견제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중앙정부 통제의 손길은 접경 지역까지 뻗쳤다. 러시아는 지난해까지 접경지역인 하산을 방치해 왔다. 그렇지만 최근에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산으로 이어진 도로를 확장하고 철도 복선화를 추진하고 있다.

전대완 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는 러시아는 북한과 연결된 두만강 철로 옆에 자동차 전용 다리를 놓고 하산에다 가스 저장시설을 세우려고 한다고 말했다.

밀려나는 한국 기업=한국 기업의 극동 진출은 다른 나라에 비해 빨랐다. 그러나 지금은 일본 중국 러시아에 치여 힘겹게 생존경쟁을 벌이고 있다.

극동지방에 진출했던 한국의 임가공 섬유 완구 업체 수십 개는 현지의 높은 생산비와 당국의 감독 등 된서리를 맞고 문을 닫거나 공장 이전을 검토하고 있다.

대기업의 선점 효과도 감소됐다는 것이 현지인들의 얘기. KT가 지분 투자한 지역통신업체인 NTK는 러시아 사업자가 고객 유치를 확대하는 바람에 수지를 맞추느라 하루하루 고객수를 세고 있는 형편이다.

블라디보스토크의 최고급 숙박시설로 꼽혔던 현대호텔도 러시아 당국과 외국 기업의 견제로 손님 유치에 고전을 면치 못한다. 극동에서 점유율 1위였던 현대자동차도 외국차의 공세로 4, 5위로 밀려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정위용 viyonz@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