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골 소년이 마침내 세계 테니스 정상에 섰다.
초등학교 3년때 아버지를 여읜 뒤 라켓 하나에 희망을 걸었던 강원도 횡성 소년 이형택. 그는 11일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남자프로테니스(ATP)투어 아디다스 인터내셔널 단식 결승에서 세계 4위 후안 카를로스 페레로(스페인)를 꺾고 우승함으로써 꿈을 이루었다. 10살 때 처음 테니스를 시작한 지 17년만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어머니가 식당일을 하는 어려운 형편에서도 결코 라켓을 놓지 않았던 그는 하루 12시간 볼을 쳤을 정도의 연습벌레. 춘천 봉의고와 건국대를 거치는 동안 가방에 늘 아령을 넣고 다니면서 힘을 길렀던 것은 유명한 일화다. 봉의고 3년 때는 42연승과 함께 6관왕의 금자탑을 쌓기도 했다
이형택의 우승은 우연이 아니라 실력이 엮어낸 값진 승리. 2000년 메이저대회인 US오픈에서 꿈의 16강 신화를 이뤘으며 2001년에는 한국인 선수로는 처음으로 ATP투어 결승에 진출했다. 마의 벽이라던 세계 랭킹 100위안에 처음으로 진입해 2001년 8월 역대 최고인 60위까지 이름을 올린 것도 역시 그였다.
지난해 부산 아시아경기대회에서 그는 노 골드의 수모를 안았다. 테니스를 시작한 뒤 가장 어려운 시기였다. 그럴수록 그는 더욱 동계훈련에 매달렸고 지난 연말 요코하마 챌린저대회에서 시즌 첫 승을 거두며 재기의 시동을 걸었다. 강도 높은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파워테니스의 바탕을 마련했고 다채로운 서브와 네트 플레이도 연마했다.
같은 동양인인 파라돈 스리차판(태국)의 활약도 큰 자극. 한 때 자신보다 한 수 아래였던 스리차판이 지난해 투어 2승을 포함해 세계 10위권으로 치솟으면서 나도 더 잘할 수 있다는 생각에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테니스 투어대회 1승은 미국 프로골프(PGA)투어 1승과 맞먹는다고 한다. 오히려 나흘 동안 승부를 겨루는 골프는 하루를 못 치더라도 만회할 기회가 주어지지만 테니스는 부진=패배를 의미하므로 더욱 힘들다. 그래서 국내 테니스인들은 한국 테니스 100년 역사 속에 처음 맛보는 이형택의 정상 등극을 지난해 최경주의 미국PGA투어 우승에 버금가는 쾌거로 평가하고 있다.
한편 이형택의 모교인 건국대는 이형택이 호주오픈을 마치고 귀국하는대로 대대적인 축하행사를 마련할 계획이다.
김종석 kjs0123@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