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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받지 못할 드라마 속 아동학대

Posted March. 25, 2014 0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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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살 소녀 정슬기는 친엄마가 집을 나간 뒤 새엄마와 함께 산다. 새엄마는 생모에게서 버림받은 슬기의 상처를 감싸주기는커녕 슬기를 학대하는 것으로 시댁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거짓말쟁이는 입을 꿰매버려야 한다며 막말을 하고, 반발하면 따귀를 때린다. 슬기가 울면 다른 식구들이 들을까 봐 아이 입을 틀어막고 넌 네 엄마한테도 못가고 외갓집도 못 간다. 여기서 나랑 살아야 한다며 눈을 부라린다.

슬기의 끔찍한 이야기는 김수현 작가의 SBS 주말드라마 세 번 결혼하는 여자에 나오는 내용이다. 슬기의 친엄마 오은수는 이지아, 새엄마 한채린은 손여은이 연기하고 슬기 역은 아역배우 김지영 양이 맡았다.

이 드라마의 시청률은 초반엔 한 자릿수에 머물렀지만 슬기가 새엄마에게 학대받는 강도가 세지자 그에 비례해 16%대까지 올라갔고 지금은 동시간대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처음엔 김 작가가 아동 학대 문제를 제기하려고 그러나보다 하고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 김 작가는 전작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동성애자를, 무자식 상팔자에선 미혼모를 등장시켜 민감한 사회 문제를 용기 있게 다뤘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지난 주말 김 작가에 대한 기대가 무너졌다. 슬기가 학대당한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친아버지 정태원(송창의)은 아내에게 이혼을 요구했다. 하지만 아내가 슬기만 하던 시절 친부의 폭력에 시달렸음을 고백하자 한순간 아내 편으로 돌아섰다. 한채린의 아동학대는 없던 일로 돼 버렸고, 슬기가 겪었던 끔찍한 일에 대해서는 더이상 언급이 없었다.

슬기를 보면서 지난해 10월 학교 소풍가는 날 아침 새엄마에게 맞아 숨진 슬기 또래의 여자 아이가 생각났다. 그해 12월 국회는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을 만들어 아동학대가 범죄임을 분명히 했다.

시청자들보다 한발 앞서 문제를 제기하기는커녕 입법 속도도 따라잡지 못하는 드라마를 보며 시청자들은 아동학대를 시청률 올리기 수단으로 악용한 작가에게 화가 난다 김수현 시대의 종언을 보는 기분이다라며 비난하고 있다. 김 작가의 오랜 팬인 기자의 생각도 이와 다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