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타자 이승엽(27)이 일본프로야구 지바 롯데 마린스 입단을 발표한 11일 오전 서울 리츠칼튼호텔 기자회견장.
회견 말미에 말을 잇지 못하던 이승엽은 감정이 복받친 듯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눈물을 훔치던 그는 안 되겠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회견장 구석으로 갔다. 그리고 5분여 동안 다시 진한 남자의 눈물을 쏟았다. 이 바람에 회견이 중단됐다.
어떤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않았고 자신의 감정을 남들에게 내보이지 않았던 이승엽. 그랬기에 공식석상에서 흘린 이 눈물은 롯데행을 결정하기까지 그가 짊어져야 했던 고뇌의 무게를 짐작케 하기에 충분했다.
9년 전 대학 입학을 원하셨던 아버님 뜻에 반해 프로야구단 삼성과 계약하던 날, 아버님 손을 잡고 두고 보십시오. 열심히 해서 꼭 호강시켜 드릴게요라고 했습니다. 이번에도 똑같습니다. 아버님께 한국최고의 타자라는 자존심을 지키고 돌아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지난달 9일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은 뒤 한 달여간 이승엽은 해외진출과 국내잔류를 놓고 고뇌했다. 최근 메이저리그의 꿈을 접은 뒤엔 일본 지바 롯데 마린스와 삼성 라이온즈의 갈림길에서 갈등했다. 돈으로 따지면 어디를 택해도 비슷했다. 하지만 하나는 거칠고 험한 길이었고 다른 하나는 편하고 쉬운 길이었다.
어디로 갈까. 10일 저녁 일본에서 김기주 Js엔터테인먼트 지사장이 전화를 했다. 롯데측으로부터 모든 요구조건을 다 들어주겠다는 통보를 받았다는 얘기였다. 이제 결정을 내리는 일만 남았다.
고민을 거듭하던 이승엽은 저녁 늦게 전화기를 들고 대구에 계신 아버지를 찾았다. 부자간의 대화는 자정을 넘어서까지 이어졌다. 이승엽은 일본행을 선택한 이유를 아버지에게 낱낱이 설명했다.
아버지 이춘광씨는 진로를 결정한 논리가 명확하더라고요. 개인적으론 삼성이 지난해 아내가 뇌수술을 할 때 헌신적으로 도와줘서 보답해야겠다는 생각도 있었고 또 일본에 가서 성공한 타자가 없는 데다 여러 가지 면에서 차별을 받을까봐 걱정돼 말렸습니다. 하지만 승엽이의 말을 듣고 네 뜻을 펼치라고 얘기했습니다. 승엽이도 9년 전처럼 열심히 해 성공하겠다고 하더군요.
이승엽은 기자회견장에 20분 늦게 나타났다. 일본행으로 굳어졌지만 끝까지 마음이 흔들렸기 때문이다.
밤잠을 설친 듯 초췌한 모습의 이승엽은 언제 최종적으로 일본행을 결심했느냐는 질문에 5분 전 기자회견장으로 올라오는 호텔 엘리베이터 안에서였다고 답했다.
하루에도 20번, 30번 생각이 바뀌었다는 이승엽은 지금 이 순간 아내는 내가 삼성에 남는 줄 알고 있다. 모든 건 나 혼자 결정한 것이다. 내 인생은 내가 결정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상수 s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