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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가던 동네금고 전무, 대포통장 조직 한패였다[히어로콘텐츠/히든②-上]

입력 | 2026-06-23 04:30:00

히든: 검은돈의 혈관, 대포통장
〈2〉 범죄 숙주가 된 제2금융권
시중銀 감시 강화에 새길 뚫어
최근 5년 발급 비중 19%→47%
범죄조직과 수사 상황 공유도




대구 달서구 MG새마을금고 이곡금고 임직원 3명은 ‘구사장’의 대포통장 조직과 결탁해 통장을 발급해 줬을 뿐만 아니라, 보이스피싱 신고를 취하시키려 신고자의 신상 정보까지 조직에 넘겼다. 이렇게 만든 대포통장 126개는 온라인 도박과 보이스피싱 등 각종 범죄에 쓰였다. 사진은 현재 다른 금고로 합병된 이곡금고의 합병 전 모습을 바탕으로 만든 일러스트.

2024년 9월 4일, 대구 달서구에 있는 MG새마을금고 이곡금고에 돌연 검찰의 압수수색 영장이 날아왔다. 이 금고에서 내준 통장 수십 개가 보이스피싱 등 범죄에 쓰였다는 내용이었다. 남의 명의를 빌리거나 가짜 회사를 세워 만든 대포통장이었다. 직원이 10명 남짓한 작은 금고는 발칵 뒤집혔다.

이튿날 금고의 실무를 총괄하는 이영환(가명·52) 전무는 조용히 움직였다. 몰래 휴대전화를 꺼내 압수수색 영장을 사진으로 찍었다. 사진은 곧장 ‘구사장’에게 전송됐다. 구사장은 대포통장 유통 조직의 총책 구태영(가명·48)이었다. 며칠 뒤 구사장을 밖에서 만난 이 전무는 경고했다. “‘우리’가 만든 대포통장이 수사받고 있어.” 수사망이 좁혀 오는 순간까지 금고 간부는 범죄 조직과 한 몸이었다.

이곡금고와 구사장 조직이 3년 8개월 동안 함께 만들어 낸 대포통장은 총 126개. 불법 도박 사이트를 포함한 온갖 범죄에 쓰였다. 보이스피싱 신고로 통장이 잠기면 이 전무는 신고자 연락처를 구사장에게 넘겼다. 구사장은 신고자를 겁박해 신고를 취하시켰다. ‘어떤 상황에도 정지되지 않는 통장’이라는 명성을 달고 통장은 날개 돋친 듯 팔렸다. 추후 검찰에 붙잡힌 구사장은 “대포통장을 사려는 곳이 너무 많아서 수요를 도저히 못 따라갔다”고 진술했다.

이곡금고는 빙산의 일각일 가능성이 있다. 최근 5년간(2021~2025년) 전국에서 보이스피싱에 사용돼 금융감독원에 등록된 회사 명의 대포통장 2만4259개를 전수 분석한 결과, 제2금융권에서 발급된 비중은 2021년 19.1%에서 지난해 46.8%로 치솟았다. 반면 시중은행 등 제1금융권의 비중은 줄었다.

제2금융권 중에서도 특히 단위농협과 새마을금고에서 발급된 대포통장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두 곳은 지역 주민이 출자해 세운 독립된 협동조합 형태로, 중앙회의 통제 권한이 약하다. 시중은행이 통장을 내줄 때 회사가 실제로 영업하는지 현장에 나가 확인하는 ‘실사’ 등 절차를 강화하자, 검증이 느슨한 상호금융을 범죄 조직이 파고든 것이다.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은 이곡금고 사건의 판결문과 내부자 증언을 토대로 컨트롤타워 없는 제2금융권이 범죄의 숙주가 된 과정을 추적했다.



 금고 전무 “통장 풀었다 ㅎㅎ” 피싱 신고자 신상 508번 조직에 넘겨

마을금고 전무와 짠 대포통장 사장 
통장 거래 묶이면 신고자 정보 받아
 “너 모를것 같아?” 신고 취소 협박

금고 전무 “통장 발급이 왜 문제냐” 
불법 의심한 직원 업무 바꾸기도
은행원과 대포통장 조직. 두 집단의 거래는 2021년 4월 시작됐다. 당시 대포통장 업계에는 “통장 장사가 예전보다 어려워졌다”는 말이 돌았다. 대형 은행들이 통장을 내줄 때 그 회사 사무실을 불시에 찾아가 실제로 영업하는지 확인하는 등 감시를 강화했기 때문이다. 조직들은 통장을 내줄 만한 새 구멍을 애타게 찾고 있었다.

그 무렵 구사장은 이 전무를 만났다. 대출 서류를 조작해 주는 ‘작업 대출’ 브로커가 인맥을 넘겼다. 몇 번의 만남으로 친분을 쌓은 구사장은 금고 인근의 한 유흥주점에서 본론을 꺼냈다. “저희가 도박 사이트를 운영하거든요. 판돈을 받을 통장을 좀 만들어 주십쇼.” 이 전무는 수락했다. 3년 8개월간 이어질 공생의 시작이었다.

이 전무가 구사장을 대포통장을 만들어주기로 약속한 유흥주점이 있던 곳. 4월 10일 찾은 이 건물은 다른 가게로 바뀌었다. 인근 주민은 “ 재작년 초인가 가게가 바뀐 것 같다”고 했다.




● “통장 다 풀었다 ㅎㅎ”… 은행원과 조직의 핫라인
구사장 일당은 가짜 건설사를 차리고 이곡금고를 찾아가 회사 명의로 대포통장을 찍어냈다. 굳이 유령 회사를 세운 건, 회사 명의 통장은 한 번에 수십억 원도 옮길 수 있어서다. 범죄 조직은 새로 개설하면 하루 송금 한도가 1000만 원도 안 되는 개인 명의 통장보다 회사 통장을 선호한다. 보통 새 통장은 한동안 거래 실적이 쌓여야 한도가 풀리는데, 이 전무는 구사장 통장의 한도도 곧바로 풀어줬다.

이 전무의 도움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보이스피싱 피해자가 은행이나 경찰에 신고하면 해당 통장은 동결된다. 그런데 구사장의 통장이 동결되면, 이 전무는 금고 전산망을 뒤져 신고자의 이름과 연락처를 찾아냈다. 그리고 이를 구사장 일당에게 넘겼다. 검찰이 확인한 것만 508차례. 이때부터 이 전무는 더 이상 은행원이 아니었다. 범죄 조직의 정보원이었다.

구사장 일당은 신고자에게 전화를 걸어 혼을 빼놨다. “내가 너 누군지 모를 거 같아, XX야?” 정체 모를 겁박을 받은 이들은 신고를 거둬들였다. 몇몇 신고자에겐 피해액 일부를 돌려주고 합의했다. 신고가 취소되면 동결됐던 통장은 되살아났다. 그 과정에서 이 전무가 직접 신고자에게 전화해 동결을 푼 뒤 이를 구사장 측에 알린 적도 있다.

“통장 2개 동결 다 풀었다. 사용해라. ㅎㅎ”(이 전무)
“네, 감사합니다. 형님.”(구사장 조직원)



이런 뒷배 덕분에 구사장 일당의 통장은 특별해졌다. 어떤 상황에서도 정지되지 않는 ‘명품’ 대포통장, 업계 은어로 ‘메이커장(帳)’이 된 것이다. 일반 회사 대포통장의 한 달 대여료는 500만 원 안팎인데 구사장의 통장은 그 두 배인 1000만 원을 호가했다. 오른 몸값 덕에 아무에게나 팔지도 않았다. 낯선 이가 통장을 사고 싶다고 텔레그램 메시지를 보내면, 아는 조직폭력배에게 ‘이 사람 믿을 만하냐’며 뒷조사를 시킨 뒤에야 통장을 내줬다.

2023년 무렵엔 통장을 만들어 주던 ‘갑(甲)’인 금고가 구사장에게 돈을 구걸하는 ‘을(乙)’이 됐다. 앞서 이곡금고가 제대로 심사도 않고 내준 부동산 대출에서 이자가 끊기며 40억 원대 적자가 난 것이다. 부실이 감사에 걸릴까 두려웠던 금고 간부들은 구사장에게 손을 벌렸다. 구사장은 여자 친구 명의 통장으로 3억8400만 원을 이자 없이 빌려줬다. 이 돈으로 당장 급한 연체 이자를 막아 부실을 숨겼다. 범죄 조직을 신고해야 할 금고가 그 조직의 돈으로 연명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 무용지물이 된 ‘이중 감시망’
이곡금고의 내부 통제 시스템은 허물어져 갔다. 금고의 실무 전반을 쥐고 흔드는 사람이 바로 이 전무였기 때문이다. 부하인 정모 상무와 박모 부장도 범행에 가담했다.

금고 안에서 의심을 품은 직원이 없었던 건 아니다. 한 직원은 매일같이 금고를 드나들며 회사 통장을 새로 개설하는 구사장 일당을 수상하게 여겼다. “더는 통장을 못 내주겠다”며 업무를 거부하자 이 전무는 아예 직원의 담당 업무를 바꿔 버렸다. 해당 직원은 “대포통장을 도대체 누구에게 줬고, 밖에서 어떻게 사용했는지는 나도, 다른 직원도 전혀 알지 못했다”고 했다.

금고에는 두 겹의 감시망이 있다. 내부 감사와 새마을금고중앙회의 감사다. 하지만 분기마다 하는 내부 감사는 금융 전문가가 아니라 지역 유지 출신 감사 2명이 형식적으로 진행했다. 범행이 시작되기 전 이곡금고 이사장을 지낸 이모 씨(81)조차 “통상 감사들이 이틀 정도 나와 서류를 보는데, 전문 지식이라곤 중앙회에 가서 일주일 교육받는 게 전부”라고 털어놨다. 2024년 5, 6월 진행된 중앙회 감사에서도 대포통장 발급 사실은 드러나지 않았다.


● 수사 중에도 “통장 사고 싶다” 연락 쇄도
영원할 것 같았던 이들의 범죄 행각은 결국 꼬리를 밟혔다. 대포통장 조직 내분으로 시작된 투서가 단서였다. 검찰이 이를 단서로 약 410개의 통장과 120건의 관련 사건을 추적해 보니 구사장 일당은 유령 회사 설립과 통장 개설, 판매까지 역할이 세분된 기업형 조직이었다. 검찰이 확보한 휴대전화에는 구사장의 대포통장 리스트와 대여료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었다. 통장이 워낙 많다 보니 장부를 꼼꼼하게 만들지 않고서는 관리가 안 됐던 것이다.

검찰 수사 중에도 구사장의 텔레그램은 “대포통장을 당장 사고 싶다”는 메시지로 가득 찼다. 구사장은 검찰 조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통장을 사려는 곳이 너무 많아서 하루에도 수십 곳씩 연락이 왔습니다.”

수사 결과 구사장이 유령 회사 15개를 세워 이곡금고에서 발급받은 대포통장은 총 126개. 법원이 인정한 통장 장사 수익만 29억 원이었다. 이 대포통장을 사들인 다른 범죄 조직들이 얼마나 많은 피해자의 고혈을 빨았는지는 파악조차 되지 않는다.


그렇게 검은돈의 혈관을 열어 준 대가로 이 전무 등 금고 임직원이 챙긴 돈은 1509만 원만 법정에서 인정됐다. 구사장에게 갚았어야 할 대출 이자 1358만 원이 그중 대부분이었다. 구사장이 유흥주점 술값을 대거나 현금을 찔러주는 등 총 7500만 원 넘게 준 정황은 있지만 입증할 증거가 부족했다. 부패와 부실이 겹친 이곡금고는 지난해 3월 인근 새마을금고로 합병됐다. 1980년 설립한 이래 45년 만이었다.

당시 대구지검에서 이 사건을 수사한 박형철 서울동부지검 검사는 이 전무가 구사장 조직의 규모를 몰랐던 것 같다고 했다. “이 전무는 수사 과정에서 ‘통장 발급해 달래서 해준 게 왜 문제냐’고 항변했다. 구사장 일당이 얻은 수익을 알려주자 그제야 눈빛이 흔들렸다”는 것이다. 검찰 일각에선 이 사건을 빙산의 일각으로 본다. 구사장 일당처럼 체계적으로 대포통장을 찍어내는 기업형 조직은 전국에서 최소 20곳 이상이 활개 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이 전무와 구사장은 금융실명법 위반죄 등으로 각각 징역 4년형이 확정돼 복역 중이다. 둘 다 변호인을 통한 해명 요청에 답하지 않았다. 가담자 중 유일하게 집행유예로 풀려난 박 부장은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라며 답을 거부했다.


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아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히든: 검은돈의 혈관, 대포통장’은 각종 범죄의 핵심 도구인 대포통장 문제를 조명했습니다.

〈히어로콘텐츠팀〉
▽팀장: 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
▽취재: 임재혁 손준영 조승연 기자
▽사진: 박형기 기자
▽편집: 하승희 봉주연 기자
▽그래픽: 김충민 기자
▽인터랙티브 기획: 김재희 기자
▽인터랙티브 개발: 임희래 ND
▽인터랙티브 디자인 및 영상: 정시은 C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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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
임재혁 기자 heok@donga.com
손준영 기자 hand@donga.com
조승연 기자 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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