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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렬히 요동치는 파도 위, 돛대가 부러진 배에 흑인 사내가 홀로 누워 있다. 주위엔 굶주린 상어 떼가 맴돌고, 멀리 수평선에선 폭풍이 몰려온다. 절망적인 상황이지만 사내는 구조를 요청하지도, 공포에 질리지도 않은 채 그저 먼 곳을 응시한다.
미국 리얼리즘의 거장 윈즐로 호머가 1899년에 그린 ‘걸프 스트림’(사진)은 강렬한 긴장감과 수수께끼로 가득한 명화다. 남북전쟁 당시 종군 삽화가로 활약했던 호머는 평생 바다와 인간의 사투를 탐구했다. 이 그림 역시 여러 차례 항해를 통해 목격한 해상 풍경을 바탕으로 완성했다. 당대 비평가들은 ‘상어들과 왈츠를 추는 황당한 연출’이라며 비웃기도 했지만, 삶의 취약성과 미국 흑인 잔혹사의 알레고리로 읽히며 결국 미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소장됐다.
흥미로운 점은 좌측 수평선 너머의 희미한 선박이다. 호머가 첫 전시 이후 작품의 절망적인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려 덧그려 넣은 장치다. 구조선일지 신기루일지 모를 이 배 한 척 덕분에 그림은 절망과 희망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을 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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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이 주는 울림은 위기 그 자체보다 위기에 맞서는 인간의 태도에 있다. 인생에서 폭풍을 피할 도리는 없다. 공포에 사로잡힐 것인지, 흔들리더라도 마음의 닻을 내릴 것인지는 각자의 선택이다. 거센 파도 속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는 힘, 이 그림은 위기의 시대를 건너는 우리에게 의연함의 가치를 일깨운다.
이은화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