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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에 맞서는 태도[이은화의 미술시간]〈426〉

입력 | 2026-06-10 23:09:00


맹렬히 요동치는 파도 위, 돛대가 부러진 배에 흑인 사내가 홀로 누워 있다. 주위엔 굶주린 상어 떼가 맴돌고, 멀리 수평선에선 폭풍이 몰려온다. 절망적인 상황이지만 사내는 구조를 요청하지도, 공포에 질리지도 않은 채 그저 먼 곳을 응시한다.

미국 리얼리즘의 거장 윈즐로 호머가 1899년에 그린 ‘걸프 스트림’(사진)은 강렬한 긴장감과 수수께끼로 가득한 명화다. 남북전쟁 당시 종군 삽화가로 활약했던 호머는 평생 바다와 인간의 사투를 탐구했다. 이 그림 역시 여러 차례 항해를 통해 목격한 해상 풍경을 바탕으로 완성했다. 당대 비평가들은 ‘상어들과 왈츠를 추는 황당한 연출’이라며 비웃기도 했지만, 삶의 취약성과 미국 흑인 잔혹사의 알레고리로 읽히며 결국 미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소장됐다.

흥미로운 점은 좌측 수평선 너머의 희미한 선박이다. 호머가 첫 전시 이후 작품의 절망적인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려 덧그려 넣은 장치다. 구조선일지 신기루일지 모를 이 배 한 척 덕분에 그림은 절망과 희망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을 품게 됐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사내의 태도다. 그는 자신을 에워싼 상어 떼에 시선을 빼앗기지 않고, 다가오는 폭풍에 절규하지도 않는다. 그저 초연하게 수평선을 바라볼 뿐이다. 그림 속 거친 풍랑은 오늘날 우리가 처한 상황과 묘하게 닮았다. 정치적 갈등은 격화되고 경제는 불안하며, 일상의 불확실성은 깊어만 간다. 때로는 사방이 상어와 폭풍뿐인 고립무원의 순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 작품이 주는 울림은 위기 그 자체보다 위기에 맞서는 인간의 태도에 있다. 인생에서 폭풍을 피할 도리는 없다. 공포에 사로잡힐 것인지, 흔들리더라도 마음의 닻을 내릴 것인지는 각자의 선택이다. 거센 파도 속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는 힘, 이 그림은 위기의 시대를 건너는 우리에게 의연함의 가치를 일깨운다.



이은화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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