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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양다리 외교, 시진핑에겐 먹힐까 [주성하의 ‘北토크’]

입력 | 2026-06-07 18:59:00


분단의 장벽 너머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반세기 동안 북한을 지켜봐온 주성하 기자의 시선으로 풀어봅니다.

2019년 6월 평양을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위해 성대한 군중 행사를 연 김정은이 시 주석의 표정을 살피고 있다. 동아일보 DB


무조건 머리를 조아리고, 필요하면 바닥도 기여야 합니다. 8일부터 1박2일 동안 평양을 방문하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맞는 김정은의 속내는 착잡할 것입니다.

7년 전인 2019년 6월 시 주석이 방북했을 땐 이 정도로 절박하진 않았을 겁니다. 지금은 중국이 없으면 대량 아사가 발생해 ‘고난의 행군’을 겪게 될 것이 불 보듯 뻔합니다.

북한은 최근 2년 동안 러시아에 ‘올인’했지만 돌아온 대가는 기대 이하였습니다. 러시아는 비싼 무기 몇 종과 군사 기술 이전은 해주었지만, 북한이 먹고살 만한 식량과 연료는 주지 않았습니다. 먹고 살려면 다시 중국에 붙어야 합니다.

하지만 시 주석도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닙니다. 북한엔 그 어느 때보다 고도의 외교가 필요한 때입니다. 북한은 20세기 후반 중국과 소련 사이에서 양다리 외교를 하며 생존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과거의 양다리 외교는 하고 싶어서 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양다리 외교를 하다가 가랑이가 찢어져 아직도 아물지 않고 있습니다. 이번엔 달라야 하겠지만, 과연 그럴까요.

1951년 4월, 중국 간부들을 만난 김일성. 천막에 건 김일성 사진 좌우로 스탈린과 마오쩌둥의 사진이 붙어 있다. 동아일보 DB



● 양다리 외교의 진실
1945년 해방 이후부터 북한은 중국과 소련의 도움으로 연명해 왔습니다. 소련은 북한 체제를 만든 종주국이었고, 중국은 6·25전쟁에서 막대한 희생을 치르면서 북한을 지켜주었습니다. 전후에도 소련과 그의 위성국들인 동유럽 국가들의 막대한 무상 원조가 없었다면 북한 경제는 소생이 불가능했을 겁니다.

그런데 1960년대부터 중국과 소련 사이가 급격히 틀어지더니, 급기야 핵전쟁 위기로까지 번졌습니다. 국경에서 벌어진 난투극으로 촉발된 두 나라의 갈등은 수천 명의 전사자를 발생시킨 전쟁으로 이어졌습니다. 특히 1964년부터 1969년 사이 갈등은 최고조에 달했고, 양국은 도합 100만 명 이상의 대군을 국경에 배치해 팽팽하게 대치했습니다.

믿어야 할 두 ‘형님’들이 눈 돌아가 총력전으로 싸우고 있으니, 김일성은 간담이 서늘해졌습니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도 제 앞가림이 급한 형님들이 도와줄지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김일성은 혼자서라도 살아남기 위해 국방비를 대거 증액해야 했습니다. 1960년에 북한 전체 예산의 1% 정도에 불과하던 북한의 국방비는 1967년에 이르러 30.4%까지 뛰어올랐다고 합니다. 갑자기 이렇게 국방비를 증액하다 보니 북한 경제는 견디지 못했습니다.

1960년대엔 한국보다 잘 살았다고 알려졌던 북한 경제는 1970년대부터 급속히 내리막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내리막이 있으면 오르막이 있다는 것이 우리가 아는 상식이지만, 지금 돌아보면 오르막은 거의 없고, 지금까지 내내 내리막만 걷고 있습니다.

형님들의 싸움은 1991년 소련이 붕괴하면서 완전히 끝났습니다. 이후 북한은 소련을 계승한 러시아의 도움을 별로 받지 못했습니다. 러시아는 서방 국가들과의 관계에 공을 기울이면서 정작 북한은 거들떠보지 않았습니다. 핵 문제가 터진 뒤 유엔의 대북 제재에 늘 동참해온 러시아 때문에 북한은 울화통이 터진 적도 많았습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달 20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공동성명을 교환하고 있다. 신화통신



● 실패하고 돌아간 푸틴
하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상황이 바뀌었죠. 이제 북한은 드디어 ‘러시아 형님’의 관심을 끄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러시아 형님이 전쟁으로 힘을 다 빼버려서 너무나 가난하다는 것입니다.

러시아가 등을 돌린 기간, 중국은 그래도 북한에 나름 많은 지원을 해주었습니다. 쌀도 주고, 석유도 보내주고, 미국의 압력에 보호막도 돼주었습니다.

하지만 중국의 지원은 항상 인색했습니다. 한 번도 배부르게 준 적이 없고, 딱 굶어 죽지 않을 정도로만 주었습니다. 때로는 미국의 눈치를 보면서 북한을 압박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북한은 늘 뒤돌아선 중국을 욕하기에 바빴습니다.

2024년 러시아에 전투 병력을 파병하고, 무기 창고를 탈탈 털어 전쟁 물자로 보내면서 김정은은 “러시아만 잡으면 우리처럼 작은 나라의 식량과 에너지를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다”고 계산했을 겁니다. 하지만 오산이었습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북한까지 챙길 정도의 여유가 없었습니다.

반면 중국의 힘은 최근 몇 년 동안 급격히 커졌습니다. 최근 한 달 동안 중국의 힘을 가늠할 수 있었던 사건들이 이어졌습니다.

이란을 공격했다가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발목이 묶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5월 13일부터 15일까지 2박3일 동안 중국을 방문해 러시아와 이란에 영향력을 행사해 달라고 요청하고 돌아갔습니다. 곧이어 19일부터 20일 사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베이징을 방문했습니다. 궁해서 바짓가랑이를 잡아야 할 사람은 푸틴 대통령이었죠.

돈줄이 막힌 그의 가장 큰 관심사는 유럽 수출이 막힌 천연가스를 중국에 파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헐값에 판다고 해도 시진핑 주석은 확답을 주지 않고 돌려보냈습니다.

1951년 4월, 중국 간부들을 만난 김일성. 천막에 건 김일성 사진 좌우로 스탈린과 마오쩌둥의 사진이 붙어 있다. 동아일보 DB



● 김정은이 매달릴 시간
이번엔 김정은이 시 주석의 바짓가랑이를 잡아야 할 시간입니다. 그만큼 북한의 내부 사정은 절박합니다.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됐는지, 북한의 목줄이 봉쇄됐는지 모를 정도로 큰 피해를 보고 있습니다.

이란 전쟁 발발 석 달 만에 쌀과 휘발유 등 모든 물가가 두 배로 뛰었습니다. 2년 전에 비하면 6배 이상의 물가 상승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런 살인적 물가를 감당하지 못해 북한 내부에선 아사자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연료가 없어 물류가 중단되고 있습니다. 거기에 비료 수입까지 막혀 올해 농사는 흉작이 예정돼 있습니다. 농사를 망치면 내년엔 더 큰 재앙이 닥쳐옵니다. 원조가 절실한데, 러시아는 식량도 연료도 비료도 주지 않고 있습니다.

이제 북한이 기댈 곳은 중국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도 빈손으로 돌려보낸 시 주석이 북한이라고 달라는 대로 원조를 줄 리 만무합니다. 중국은 과거에도 늘 그랬습니다. 뭘 주면 꼭 반대급부를 요구했습니다.

더구나 지금은 절박해진 푸틴 대통령과 김정은이 양쪽 가랑이를 잡고 매달리는 형국이니, 시진핑 주석의 파워는 그 어느 때보다 더 강력해졌습니다.

지금 시 주석의 최고 관심은 북한도 러시아도 아닐 겁니다. 미국이 이란 전쟁으로 막대한 국력을 탕진한 지금이 경제와 대만 문제에서 미국의 더 큰 양보를 받아낼 수 있는 최적의 시간입니다. 이를 위해선 북한과 러시아는 얼마든지 카드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언론들은 시 주석이 방북해 동해 진출권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란 관측을 내놓고 있습니다. 그게 목표라면 다급해진 북한에 요구할 수 있는 적기임이 분명합니다. 대북 제재에 동참한 중국에 삐져 12년째 열어주지 않고 있는 신압록강대교의 연결을 요구한다면 북한도 거절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북한이 중국에 얼마나 양보하는지는 북중 정상회담이 끝난 뒤에도 쉽게 알긴 어려울 겁니다. 공식 보도는 ‘양국의 관계는 최상’이며 ‘다극 세계 질서를 위해 공동으로 협력’하고 했고 ‘경제협력을 확대시킨다’는 식으로 나오겠죠. 진짜 이야기는 늘 숨어있죠.

신압록강대교가 연결되는지, 나선시에 중국이 진출하는지, 단둥을 통해 얼마나 많은 물자가 북한으로 들어가는지, 북한 인력이 중국에 얼마나 나오는지 등의 디테일을 앞으로도 꾸준히 관찰해야 합니다. 과거 재미를 보지 못했던 북한의 ‘양다리 외교’가 이번엔 어떤 결과를 만들지 궁금해집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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