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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 ATM, PF… 혁신 금융 시스템의 설계자[이준일의 세상을 바꾼 금융인들]

입력 | 2026-05-25 23:06:00


월터 리스턴



이준일 경희대 회계학과 교수

석 달째 이어지는 이란 전쟁으로 미국의 군사적, 경제적 패권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전 세계 거래 대금의 표준인 달러의 패권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중동에서 원유를 수입하면 달러화로 대금을 결제하는데 이 구조에 균열이 보이는 것이다.

미국 은행 시스템 밖에서 유통되는 달러 예금을 ‘유로달러’라고 한다. 달러가 미국을 떠나 전 세계에서 활발하게 사용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국제 은행 간 통신협회(SWIFT)’ 시스템이 있다. 이란과 러시아를 SWIFT에서 배제했다는 것은 은행 간 국제 거래에서 이들 국가를 따돌려 버리겠다는 것이다.

SWIFT 이전 국제 은행 간 거래는 우편이나 전보와 유사한 텔렉스를 통해 이뤄졌다. 느린 데다 오류나 진위 판단이 어려운 점은 국제 거래의 제약이었다. 이때 급성장하던 유로달러 시장을 장악하기 위해 1970년대 초 시티은행은 최초로 국제 은행 간 전산·통신 시스템을 개발해 다른 은행에 구독료를 받고 보급하려 했다. 컴퓨터를 통한 표준화된 규약으로 압도적으로 빠르고 신뢰할 수 있는 거래가 가능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고객 거래정보를 시티은행에 빼앗기는 것은 은행들에 위협적인 일이었다. 시티은행의 독주를 막기 위해 유럽 은행들이 주도해 만든 것이 바로 SWIFT다.

SWIFT의 등장을 자극한 이가 바로 월터 리스턴(1919∼2005)이다. 리스턴은 1946년 오늘날 시티그룹의 모체인 퍼스트 내셔널 시티은행에 입사해 1967∼1984년 최고경영자(CEO)와 이사회 의장으로 재직하면서 은행의 혁신을 이끌었다.

양도성예금증서(CD)도 그의 발명품이다. 당시 규제로 인해 은행 예금에는 이자가 없거나 상한을 적용받았다. 기업 예금자들은 은행에서 돈을 빼 단기국채나 기업어음 등에 투자했고, 은행은 예금 부족에 시달렸다. 1961년 리스턴은 규제를 피해 은행에 예금을 했다는 증서를 사고팔 수 있게 해 자금을 다시 은행으로 끌어왔다.

예를 들어, 100만 달러를 예치한 기업에 ‘6개월 뒤 본 증서의 소지자에게 100만 달러와 연이자 4%를 지급한다’는 증서를 만들어 준다. 기업은 만기까지 기다릴 수도 있고 중간에 자금이 필요하면 증서를 다른 이에게 매도할 수도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이자를 받으면서 자금을 탄력적으로 운용할 수 있고, 은행 입장에서는 6개월간 자금을 묶어 놓으니 대출이나 투자에 활용할 수 있다.

현금자동인출기(ATM) 보급, 신용카드 대중화도 이끌었다. 당시 개인 고객을 상대로 하는 소매금융은 기업금융에 비해 수익성은 낮고 비용만 높은 분야로 여겼는데 리스턴의 지휘 아래 수백만 명의 소비자에게 금융서비스를 제공한 것이다. 은행이 전통적인 신용도나 자산을 기반으로 대출하는 데서 벗어나 미래 수익을 보고 대출하는 프로젝트파이낸스(PF)에 진출하게 한 것도 리스턴이다. 그의 경력 초기 그리스 선박왕 오나시스의 회사가 석유회사와 맺은 장기 운송계약에서 향후 받게 될 수입을 담보로 선박 구매대금을 장기 대출해준 것이다.

리스턴은 자유로운 자본의 이동을 강조했고 금융 발전에 기여했다. 하지만 SWIFT는 이제 달러 패권을 지탱하는 핵심 인프라이자, 특정 국가를 국제 금융에서 퇴출시키는 제재 수단이 됐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이준일 경희대 회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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