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모 빚 대신 값으며 남매 불만 쌓여 인지 저하-배변 실수에 지속적 학대 노모 입에 청테이프 붙이고 폭행하고 한겨울에 마당 내쫓고 현관 잠그기도 檢, 딸 무기징역·아들 20년형 구형 법원 “우발적 감정탓…병원 치료도” 존속폭행치사 적용해 징역 7년·3년형
AI 생성 이미지. 뉴시스
심지어 이번 폭행이 처음도 아니었다. 남매는 2024년 5월부터 1년 6개월이 넘도록 80세에 가까운 노모를 지속적으로 폭행해왔다. 결국 박 씨는 당일 오후 1시경 자택 인근 병원에서 외상성 쇼크로 숨을 거뒀다.
1심 재판부인 서울남부지법(부장판사 박종열)이 지난달 17일 누나 백모 씨(47), 남동생 백모 씨(43)에게 내린 판결은 각각 징역 7년과 3년. 존속살해 혐의 등으로 기소된 두 남매에게 노모를 살해하려는 고의가 있었다고 판단하긴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 앞서 검찰은 누나에겐 무기징역을, 남동생에겐 징역 20년을 구형했다. 판결에 대해 피고인들과 검찰 모두 항소했다. 이 가정에선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 노모 입에 청테이프 붙인 채 폭행한 자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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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폭행은 2024년 5월부터 시작됐다. 노모가 나이가 들어가며 인지능력이 저하돼 집안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멍하니 있는 등 이상행동을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지속적으로 폭행을 당하던 박 씨가 지난해 12월 5일 숨쉬기를 어려워하자 남매는 박 씨를 병원에 데려갔다. 의사는 “피해자의 폐 기능이 현저히 떨어져 있고 폐에 물이 차 있으며 오래된 갈비뼈 골절이 보인다”고 진단했다.
그럼에도 남매의 폭행은 이어졌다. 박 씨의 사망 3일 전인 지난해 12월 7일, 남매는 박 씨가 바지에 소변을 보고 가래 끓는 소리를 내 화가 난다는 이유로 박 씨의 얼굴과 등, 옆구리 등을 주먹 등으로 여러 차례 때렸다. 다음 날에도 박 씨가 바지에 소변을 보자 누나 백 씨는 모친의 입에 청테이프를 붙이고 폭행했다. 이후 귀가한 남동생은 박 씨에게 “일어나 밥을 하라”고 했지만 하지 못하자 또 때리기도 했다.
사망 하루 전인 지난해 12월 9일 누나 백 씨는 또다시 바지에 소변을 본 박 씨에게 분개해 머리채를 휘두르고 폭행을 한 뒤 박 씨를 끌고 마당에 나와 박 씨를 버려둔 채 현관문을 잠그고 혼자 집안으로 들어갔다. 한겨울에 80세에 가까운 노모를 그대로 내버려두고 집 안으로 들어가 버린 것.
이후 남동생 백 씨가 박 씨를 데리고 집으로 들어왔지만 그 역시 박 씨가 제대로 걷지 못하고 밥을 먹지 못 한다는 이유로 현관과 식탁에서 박 씨를 여러 차례 때렸다. 결국 박 씨는 지속적인 폭행을 당하다 지난해 12월 10일 인근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서울 종로구의 한 골목길에서 노인이 먹을 것을 들고 귀가하는 모습. 동아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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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는 “피고인들이 피해자를 반복적으로 폭행해 온 점과 사망 원인이 전신 손상에 따른 외상성 쇼크로 보이는 점 등을 고려하면 사망 결과를 예견할 수 있었던 측면이 있다”며 “피고인들의 폭행 정도가 피해자(박 씨)가 사망하기 전날 더욱 심해져 쇠약해진 피해자가 이를 견디긴 어려웠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남매는 박 씨가 사망하기 직전까지도 박 씨가 잠자고 있다고 생각해 각자 TV를 보거나 반려견을 산책시키는 등 태연하게 일상 활동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남매의) 폭행이 계획적으로 이뤄졌다기보다는 우발적 감정에 따른 경우가 많고 치명적 도구를 사용하지 않은 점, 피해자 상태가 악화하자 병원 진료를 받게 하고 약을 먹이려 한 점, 직접 심폐소생술을 하고 119에 신고한 점 등을 종합하면 살해의 고의까지 인정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남매가 어머니 박 씨에게 갖고 있던 불만이 박 씨를 살해할 정도의 원한으로 깊어졌다고 보기는 힘들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또 박 씨의 유족이자 조카인 박모 씨가 남매에 대한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점 등도 유리한 양형 사유로 작용했다. 남매는 재판부에 여러 차례 반성문과 선처문을 제출하기도 했다.
50대 장모를 살해하고 캐리어에 담아 대구 북구 신천 잠수교 인근에 버린 혐의(존속살해 등)를 받는 20대 사위(왼쪽)와 시체유기 등 범행에 가담한 20대 딸이 지난달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받기 위해 대구지방법원에 도착한 모습. 대구=뉴스1
● 2024년 존속살해 60건 발생…다시 증가세
부모나 조부모 등을 대상으로 한 존속살해는 매년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존속살해 건수는 2021년 59건(기수 28건·미수 31건)에서 2022년 48건(기수 32건·미수 16건)으로 소폭 낮아졌다가 2024년 60건(기수 28건·미수 32건)으로 다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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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간병에 지쳐 노모를 살해한 자녀도 있었다. 자영업을 하며 25년간 어머니를 보살핀 박모 씨(63)는 어머니가 2021년 알츠하이머성 치매 진단을 받은 뒤 증세가 점점 심각해지자 정신적, 경제적으로 한계에 다다랐고 결국 순간적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전남 장성군의 선산에서 80대 모친을 목 졸라 살해했다. 지난달 법원은 존속살해 혐의로 구속 기소된 박 씨에게 징역 6년을 선고했다.
전문가들은 존속살해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것에 대해 ‘가족 공동체 해체’를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박승희 성균관대 사회복지학과 명예교수는 “자본주의 사회가 심화되고 가족·이웃 공동체가 분리, 축소되며 사회 통제력이 약해져 가족과 이웃 간 범죄가 증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족 수가 줄어들고 기능이 축소되며 ‘독박 돌봄’이 증가하는 것도 최근 존속살해가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박 교수는 “국가가 나서서 구체적인 노인 돌봄의 협력 체계를 제도화해야 한다”며 “개인 역시 국가에만 노인 돌봄을 맡기면 안 되고 가족 공동체 내에서도 노인을 위한, 돌봄을 위한 방안을 고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소설희 기자 facth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