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용 칼럼니스트
그 마음 이해한다. 내가 가게를 하는데 화장실에서 남의 대변을 치워야 한다면 나 역시 여러 생각이 들 듯하다. 그러나 세상에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게 있다. 내 짧은 경험과 제한된 상식에 따르면 급한 변의와 관련된 일들은 내가 아는 ‘어쩔 수 없는 일’의 순위 중 언제나 최상위권이다. 커피의 어떤 성분은 사람에 따라 이뇨 작용이나 배변 작용을 유발하기도 한다. 그런 사람이 이 카페의 화장실에 들어간다면 어쩌려나. 괜히 나까지 걱정된다.
“남이 쓰다 막힌 화장실을 뚫을 수 있나요?” 몇 달 뒤 어느 자리의 설문지에서 이런 문항을 만났다. 독립서점 창업 희망자를 위한 세미나 자리였다. 문항을 만든 사람은 한국에서 가장 성공적인 독립서점을 운영하고 있는 서점리스본 정현주 대표였다. 그는 한국 독립서점계에서 전무후무한 성과를 내고도 세미나 내내 현실적인 이야기를 했다. 그중 하나가 손님들과 사이에서 일어나는 이런저런 일들이었고, 그중 하나가 화장실 관리였다. 어쩔 수 없다. 일이 그런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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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변 금지 카페의 위치 등 자세한 설명은 최대한 자제하려 한다. 나는 이곳을 비난하려는 생각이 없다. 이 원고로 인해 그곳이 피해를 입기를 원하지도 않는다. 다만 그 카페의 강렬한 메시지와 화장실 정책은 내게 계속 이어지는 질문을 심어줬다. 그 질문이란 이것이다. 일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카페의 일은 맛있는 커피를 정성껏 내려주면 거기까지인가? 손님 혹은 방문객의 이런저런 사정까지 챙기는 것은 카페 일을 벗어나는 일인가? 적어도 그 카페는 그렇다고 답한 셈이다. 그 카페의 정책이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모르지만.
대변 금지 카페는 적어도 내게는 확실한 영향을 미쳤다. 나는 그 이후 젊은이가 운영하는 작고 예쁜 카페에 가기 전에는 나의 대장 상태를 돌아보게 됐다. 곧 화장실에 갈 것 같은 예감이 든다면 젊고 작고 예쁜 카페에는 가지 못할 것 같다. 두 번 다시 보지 않을지도 모르는 카페 사장님께 똥쟁이로 기억되고 싶지는 않다.
박찬용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