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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閶門)을 다시 찾으니 모든 것이 예전 같지 않구나.
함께 이곳에 왔거늘 어찌 함께 돌아오지 못하는가.
서리 맞아 반쯤 시든 오동나무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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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의 풀, 이슬은 막 마르기 시작하는데,
옛 보금자리와 새 무덤 사이,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구나.
빈 침상에 누워 남창의 빗소리 듣노라니,
누가 다시 등불 돋우어 내 옷을 기워 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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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上草, 露初晞, 舊棲新壠兩依依. 空牀卧聽南窗雨, 誰復挑燈夜補衣.)
―‘자고천·중과창문만사비(鷓鴣天·重過閶門萬事非)’ 하주(賀鑄·1052∼1125)
사별의 슬픔은 동선에서 드러난다. 시인은 쑤저우(蘇州)의 옛 성문을 다시 찾는다. 지난날 아내와 함께 들어왔던 곳이다. 세상은 멀쩡한데 사람만 달라졌다. 그는 자신을 반쯤 말라 버린 오동에, 짝을 잃은 원앙에 겹쳐 놓는다. 반은 이미 죽은 듯한 처지요, 날갯짓조차 갈 곳을 잃었다.
시 후반의 아픔은 더 구체적이다. 들풀 위 이슬이 마른다. 아침 햇살만 닿아도 사라지는 것, 그 덧없음으로 사람 목숨의 짧음을 떠올린다. 이어 시선은 옛집과 새 무덤 사이를 오간다. 한쪽에는 함께 살던 시간이 남아 있고, 다른 한쪽에는 먼저 떠난 사람이 누워 있다. 그래서 그는 두 곳 어디에서도 쉽게 발을 떼지 못한다. 남은 사람의 비애란 어느 한 곳으로도 완전히 갈 수 없는 데 있다. 죽음은 한 사람을 데려가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남은 사람의 일상에서도 익숙한 온기를 조금씩 걷어간다. ‘자고천’은 곡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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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