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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는 유전일까, 환경일까. 개인으로 보면 유전의 영향이 우세하겠지만, 집단의 평균 신장은 환경적인 영향이 크다. 200개국 아동 및 청소년(5∼19세) 6500만 명의 평균 키와 체질량지수(BMI)를 장기간 추적한 연구 결과가 2020년 의학 저널 랜싯(Lancet)에 실렸다. 1985∼2019년 35년간 한국은 세계에서 평균 신장이 가장 빠르게 자란 나라 중 하나였다. 한국 남학생은 세 번째, 여학생은 두 번째를 기록했다. 한국 중국 베트남 등 아시아 국가들이 최상위권을 휩쓸었는데 모두 급속히 경제 발전을 이룬 나라들이다. 충분한 영양, 깨끗한 위생 등 환경적 요인이 아이들을 쑥쑥 자라게 한 것이다.
▷요즘 거리마다 외국인 관광객이 붐빈다. 그런데 생각보다 키가 크지 않아서 뜻밖이었다. 과거 올림픽, 월드컵에서 우리를 이긴 외국팀 선수들을 보며 ‘서구형 체형’ ‘타고난 체력이 다르다’는 말을 듣고 자란 세대로선 놀랍기도 하다. 교육부가 최근 발표한 학생 건강검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고1 학생의 평균 키는 남학생 173cm, 여학생 161.3cm였다. 고1이면 연간 몇 cm씩 크는 성장 급등기가 거의 지난 다음이라 성인까지 비슷한 수준이 유지된다.
▷고1 학생의 평균 키는 일본을 3∼4cm가량 일찌감치 따돌렸고 미국 학생들과도 비등비등하다. 지난해 미국 국립보건통계센터에 따르면 우리나라 고1에 해당하는 16∼17세 남학생 평균 키는 174.4cm, 여학생은 161.1cm다. 여학생은 오히려 한국보다 작았다. 1970년대 이후 미국인의 평균 신장이 정체되면서 양국의 키가 비슷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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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평균 신장은 그 나라의 경제력 총량과 불평등 정도, 복지 제도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다. 고1 남학생 키가 170cm를 넘고, 여학생은 160cm를 넘어선 건 1997년이었다. 경제 호황기를 지나며 영양, 위생, 의료가 크게 개선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이후론 고1 남학생의 평균 키가 3cm가량 자랐을 정도로 증가 속도는 둔화됐다. 유전자에 숨어 있던 키는 다 자란 것 아닐까 싶다. 문제는 앞으로 미국을 따라가지 말란 법이 없다는 점이다. 학생들의 신체 활동이 갈수록 줄어들면서 고1 남학생 100명 중 6명이 소아 대사증후군을 앓고 있다. 이젠 키에 집착하기보다 건강하게 자라도록 도와야 한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