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리 에세이스트
하루는 같이 일하던 선배가 바람이나 쐬고 오자며 손을 잡아끌었다. 할 일이 많다는 대꾸에 선배는 문득 진지한 얼굴로 할 얘기가 있다고 했다. 건물을 나서자 쏟아지는 햇살에 눈이 부셨다. 선배가 사준 커피를 마시며 나란히 걸었다. 문밖은 어느새 봄, 지천에 꽃이 피어 있었다.
“김연수 작가가 그러더라. 봄에 대해서 쓰고 싶다면, 봄에 어떤 생각을 했는지 쓰지 말고, 무엇을 보고 듣고 맛보고 느꼈는지를 쓰라고. 봄이 되면 무조건 시간을 내서 좋아하는 사람이랑 꽃을 보러 다니고, 잊지 못할 음식을 먹고, 그날의 날씨와 눈에 띈 일들을 일기장에 적으라고. 우리 인생은 그런 것들로 만들어져 있대. 수리야, 너 작가잖아. 햇살이 좋잖아. 꽃이 예쁘잖아. 나랑 커피 마시면서 산책했던 하루를 써야지. 나중에 우리 인생은 이런 것들로 기억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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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어느 시기를 치열하게 살아보는 건 틀림없이 좋았다. 그러나 스스로를 지나치게 다그쳐 삶이 일에 매몰되어 버리자 중요한 것들이 사라지고 말았다. 나의 일상과 관계가, 여유와 웃음이.
선배들의 말이 옳았다. 지나오고 나서야 그때 참 좋았노라 떠오르는 기억들은, 일상의 쳇바퀴를 바쁘게 돌면서도 틈틈이 맛있는 걸 먹고, 예쁜 걸 보고,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던 순간들이었다. 어제를 후회하고 내일을 걱정하며 그늘진 마음으로 시들어가는 나에게, 밖으로 나가자고 손을 내밀어준 사람들과 누려 보던 망중한. 행복은 미루는 게 아니라는 걸 이제는 안다. 햇살이 좋다고. 꽃이 예쁘다고. 그 봄날의 선배처럼, 나도 누군가의 손을 잡아끌고 싶다. 창밖에 날씨가 좋다. 잠시나마 나가서 제철 행복을 만끽하기를.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지금 이 순간을 살아 보았으면 좋겠다.
고수리 에세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