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렉터 그룹 ‘아르케 Ⅱ’ 소장품전
대전 복합문화예술공간 헤레디움에서 26일까지 열리는 ‘미완의 지도’에 전시된 소장품 앞에 선 한송이 씨. 작품은 한국계 미국 작가 아니카 이의 ‘Late Classical XVIII’이다. 한 씨는 “어린 시절 대전에서 자라면서 문화를 접할 기회가 적었는데, 이번 전시로 미술 작품을 보여줄 수 있게 되어 뜻깊다”고 했다. 헤레디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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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 문화부 기자
초라한 구두와 철근으로 만든 현대미술 작품, 미술에 관심 없는 사람에겐 낯설기만 한 이야기죠. 만약 이 작품을 한국에서 누군가 소장했다면 전문적인 기관에서나 했을 것 같지만, 놀랍게도 이 작품의 주인은 개인 소장가입니다. 2017년부터 공동으로 미술품을 소장해 온 그룹 ‘아르케 Ⅱ’의 회장인 한송이 씨를 최근 만났습니다.
호크니전 초대받은 유일한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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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갤러리스트들 사이에서 우스갯소리처럼 나오는 말이 있습니다. ‘고급 아파트에 가면 층마다 주인은 다른데 걸린 작품은 비슷하다’는 것인데요. 어느 나라건 특정 작가 작품에 관심이 쏠리고 유행하는 현상은 있지만, 한국은 유독 그 쏠림이 심하다는 얘기입니다. 독특하게도 ‘아르케 Ⅱ’ 소장품전에서는 그런 ‘유행 작품’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한 씨는 “그림을 통해서 누군가의 인정을 받는 것보다 나를 일깨워 주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말합니다.
“예술 작품은 세상의 변화를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우리에게 가장 먼저 알려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고, 그들이 고통을 겪으며 만들어낸 창작물을 통해 각성되는 경험을 좋아합니다.”
그의 컬렉션은 폭력적이고 섹슈얼한 그림으로 유명한 미리암 칸, 곰팡이와 세균으로 설치 작품을 만드는 아니카 이 등 평범한 사람의 시각에선 ‘독특하다’고 여겨질 작품들이 많습니다. 이러한 ‘독특함’이 오히려 그를 개성 있는 컬렉터로 만들어 준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해 소장품 두 점이 국내외 중요한 미술 기관, 리움(아니카 이의 설치 작품)과 프랑스 파리 루이뷔통재단 미술관(데이비드 호크니의 드로잉)에 전시됐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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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렉션의 시작, 아르케 Ⅱ
한 씨가 컬렉션을 함께 하고 있는 ‘아르케 Ⅱ’는 건축 문화를 공부하던 모임에서, 일부가 미술에 뜻을 모아 2017년부터 시작했습니다. 1904년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공동 컬렉터 그룹 ‘곰 가죽 클럽(Le Peau de l’Ours)’에서 영감을 얻었는데요. 곰가죽 클럽은 10년 동안 참가자들이 일정 금액의 돈을 모아 작품을 공동 구매하고, 10년 뒤 수집품을 처분하며 해산했습니다. 이때 소장품에 피카소, 마티스, 고갱 등 미리 알아본 훌륭한 작품이 많아 좋은 결과를 거뒀다고 합니다. 헤레디움의 ‘미완의 지도’전에는 아르케 Ⅱ의 공동 소장품 14점과 각 회원의 소장품 등 총 30점이 전시됩니다.
‘아르케 Ⅱ’도 공동 예산을 마련하고 회원 중 일부에게 작품 선정을 위임하며 만장일치를 통해 작품을 소장합니다. 한 씨는 “혼자서 하는 컬렉션이 아니기 때문에 책임감이 더 생기고, 덕분에 작품에 대한 습득력과 몰입감이 더욱 높아졌다”고 말합니다. 여기에 어린 시절부터 가졌던 예술에 대한 애정도 더해졌습니다.
“사실 제 성향은 문과였는데, 아버지의 권유로 의대에 진학해 의사가 됐어요. 초등학생 때 화가가 되고 싶다고 한 저에게 아버지가 책을 사 주셨는데, 그걸 보고 ‘예술가는 자기 귀를 자르고 가난하게 살다 굶어 죽는구나’ 하고 어린 마음에 겁이 났거든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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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작가 중에는 고통 속에서 자신을 꽃피워낸 사람이 많습니다. 그 말은 좋은 작가가 되려면 깊은 고통을 안고 사는 삶을 각오해야 한다는 이야기죠. 그래서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요. 저는 예술 작품에서 안정과 편안함을 찾기보다는, 고통과 불안을 통해 일어나는 각성, 일깨움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미술 작품 컬렉션이라고 하면 투자나 가격 같은 금전적 가치가 먼저 떠오르곤 하는데요. 이런 가운데 개성을 가진 소장가들의 예술품들을 통해 예술가들이 예민한 감각과 고난 가운데서 만들어 낸 상징을 통해 교감하고, ‘나를 새롭게’ 만드는 경험에 대해서도 한번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김민 문화부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