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 전쟁 참여 독려 노래 후쿠오카 강제 동원 역사 사료관에 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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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친일반민족행위자 최남선 작곡 ‘총후의 노래’ 가사가 처음 발견됐다.
총후의 노래는 강제 징용자와 문인,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태평양 전쟁 참여를 독려했던 노래다.
27일 한일문화연구소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때 총독부는 문화인에게 접근해 도움받거나 주기도 했다. 해방 후 이런 문화인은 때에 따라 친일파 인물로 간주하기도 하고 때로는 애국자로 인정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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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 행위의 하나로 ‘총후의 노래’를 들 수 있다. 만주사변 후 급변하는 정세에 부응해 조선인의 공감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데 공헌했다. 총후는 조선인을 가르쳤다는 뜻이다. 총은 총(조선인 군인)을 매고 일선에 싸우는 자를 말하고 후(후방에 있는 조선인)는 전쟁 승리를 위해 총단결하는 조선인을 뜻한다. 전방에서 싸울 때 후방에 사는 국민을 총후라고도 했다.
가사를 보면 ‘언덕에 마소(馬牛) 치는 아이들아 / 한 포기 풀이라도 더 뜻기라(뜯기라) / 진땀을 흘리면서 쌈(싸움)하는 이 / 그 내만 고생하라 어찌하리 / 제각금(재각기) 압해당한(압박해 당한) 그일 그 일로 / 의용봉공(義勇奉公)에 참예(참여)하라
베틀에 필육 낫(길쌈)는 색시들아 / 한바디(한마디) 실이라도 더 멱이라(먹이라) / 밤 잠을 못 자면서 쌈하는 이 / 그대만 애쓰라 어찌하리 / 제각금 앞에 당한 그일 그 일로 / 의용봉공에 참예하세
농부는 가럐한번 더 내흐며(갈며) / 바치(농부가)는 마치 한번 더 따리며 / 장사는 주산 한번 더 굴리며 / 선비는 책 한 장을 더넘기라(떠 넘기라) / 제각금 앞에 당한 그일그일로 / 의용봉공에 참예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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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래는 의용봉공가로도 유명하다. 1943년 태평양 전쟁을 앞두고 식민지 국민정신을 총동원할 때 만든 곡이다. 조선 민요 아리랑을 금지하고 조선인만 부르도록 했다. 최남선이 작사하고 이면상이 작곡했다.
가사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어린아이부터 길쌈한 부인·농부·문인·장사꾼 등 누구나 불렀다. 총을 가지고 일선에서 싸우는 장병들, 후방에 사는 국민은 총후의 백성이라 했다. 즉 식민지국까지 전쟁의 기수였다. 전쟁 에너지인 석탄 한 톨이라도 더 캐내도록 조선인을 독려하는 노래였다.
한일문화연구소 김문길 소장(부산외대 명예교수)은 “이 같은 노래를 지어 아리랑을 금지하고 남녀노소 모두가 불러 천황 정신 배우도록 했다”며 “물질문명이 부족한 일본 제국은 8월 15일 패망하고 그렇게 불렀던 총후의 노래는 부끄러운 듯 강제 동원 역사 사료관(후쿠오카 이츠키)에 숨겨놨다”고 밝혔다.
[울산=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