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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위성도 PC처럼 쓴다” 확신하는 한국인[허진석의 톡톡 스타트업]

입력 | 2026-03-07 01:40:00

우주 AI로 위성 활용 방식 바꾸는 텔레픽스
천리안 위성 개발 참여해 연구하다 민간 우주 스타트업 성장에 사업화
우주서 바로 영상 처리 AI 프로세서… 블루카본 모니터링하는 AI 큐브위성
위성 데이터 분석 특화 AI 에이전트… 3대 핵심 제품 세계 처음으로 개발
헝가리 국가 위성에 카메라 수출도



조성익 대표가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사무실에 AI 큐브위성 ‘블루본’에 탑재되는 광학탑재체를 설명하고 있다. 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자정이 넘은 시각, 연구원 하나가 모니터를 혼자 응시하고 있었다. 2010년 북한의 연평도 포격이 있던 날,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 해양위성센터의 조성익 연구원은 천리안1호가 촬영한 연평도 위성 영상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화면 속엔 한 시간의 시차를 두고 포연이 피어오르는 장면을 정확하게 포착됐다. ‘개발비만 3500억 원에 달하는 국가 위성이 이런 영상을 잡아냈는데, 지금 이 장면은 나만 보고 있구나’. 위성 영상을 누구나 활용할 수 있으면 세금 낭비는 줄이고 새로운 기회를 많이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날 밤, 텔레픽스의 씨앗이 조용히 뿌리를 내린 셈이다. 올해 1월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사무실에서 만난 조성익 텔레픽스 대표이사(48)는 “2021년부터 경영하고 있는 텔레픽스는 위성의 눈에 해당하는 광학 탑재체부터 인공지능(AI) 기반 위성 영상 빅데이터 분석 소프트웨어까지 위성 산업 전 주기 기술을 보유한 국내 유일 기업이 됐다”며 “인공위성을 PC처럼 개인이 활용하는 시대를 앞당기고 싶다”고 했다.

● 3500억원 위성 영상을 혼자 보는 시대의 종언

인공위성은 오랫동안 국가 전유물이었다. 정보기관과 특정 부처만이 활용하는 정보자산, 그것이 위성 영상의 지위였다. 하지만 조 대표는 다른 관점으로 접근했다. 지금도 큰 민간 기업들은 비싼 비용을 지불하고 위성 사진을 활용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활용하면 경제적 부가가치를 만들 가능성은 더 커질 것이라고 봤다.

텔레픽스가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위성 활용의 대중화, 민주화다. 지금도 위성 영상은 활용되고 있지만 분석이 약하다는 것이 조 대표의 판단이다. 실제로 정부 기관 관계자들은 “의사 결정권자들은 위성 영상이 아닌 분석 결과만 원한다”고 토로한다. “위성 데이터가 늘어날수록 업무량이 늘어나는데 인력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현장의 고충도 듣고 있다. 최근 농업과 물류, 기후 모니터링 등 다양한 분야에서 위성 데이터 수요가 늘면서 위성 활용이 정부 중심에서 민간으로 확대되고 있다.

● 세계 최초 기록을 잇따라 쓴 3대 핵심 기술

텔레픽스가 대전에 두고 있는 차세대 인공위성 광학탑재체 개발시설 스페이스랩 클린룸에서 조성익 대표(가운데)와 임직원들이 광학 부품 및 시스템의 조립 정렬과 성능 테스트에 쓰이는 대형 시준기를 살펴보고 있다. 텔레픽스 제공

텔레픽스의 기술 경쟁력은 세 가지 핵심 제품에 집약된다. 먼저 세계 최초 우주용 온보드 엣지 AI 프로세서 ‘테트라플렉스(TetraPLEX)’다. 기존에는 위성이 촬영한 영상을 처리하려면 지상국으로 전송한 뒤 분석해야 했고, 이 과정에만 최소 6분 이상이 소요됐다. 테트라플렉스는 그래픽처리장치(GPU)·중앙처리장치(CPU)·프로그램 가능 논리 소자(FPGA)의 3중화 체계를 탑재해 우주에서 직접 AI로 영상 분석 데이터를 처리한다. 영상 처리 시간을 기존의 35분의 1로 줄였다. 이 기술은 2024년 8월 스페이스X 재사용 발사체 팰컨9에 실려 우주로 나갔고, 이후 15개월 이상 궤도에서 정상 작동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2024 초소형 위성 기술 현황 보고서’에도 등재됐다.

두 번째 무기는 AI 큐브위성 ‘블루본(BlueBON)’이다. 2025년 발사에 성공한 블루본은 세계 최초로 블루카본(해양생태계 탄소 흡수원)을 모니터링하는 AI 큐브위성으로, 자체 개발한 다분광 광학탑재체와 테트라플렉스를 함께 탑재했다. 블루본은 작년 6월 미국의 이란 이스파한 핵시설 공습 현장을 포착해 분석한 보고서로 7월 초에 세상의 주목을 받았다. 같은 해에는 폴란드 위성 기업과 30만 달러 규모의 유럽 영상 판매권 계약을 체결하며 국내 최초 큐브위성 영상 수출의 역사를 썼다.

2024년 이탈리아 밀라노 제75회 국제우주대회(IAC)에서 조 대표가 해외 우주 산업 관계자들에게 위성데이터 분석 특화 에이전틱 AI 솔루션 ‘샛챗’을 소개하고 있다. 텔레픽스 제공

세 번째 핵심 제품은 세계 최초 위성 데이터 분석 특화 AI 에이전트 ‘샛챗(SatCHAT)’이다. 챗GPT처럼 자연어로 질의하면 위성 영상 탐색부터 분석, 보고서 생성까지 자동으로 처리해 준다. 기존에는 위성 영상 탐색부터 분석 보고서 완성까지 2∼5일이 걸렸지만, 샛챗은 이 모든 과정을 수 분 안에 처리해 95% 이상의 시간을 아껴준다. 지난해에는 국내 대형 정부 기관과 최초로 대규모 공급 계약을 체결하며 상업적 가능성을 증명했다.

텔레픽스는 지난달에는 헝가리 정부의 국가 지구 관측 위성 프로그램(HULEO)에 수천만 달러 규모의 고해상도 전자광학(EO) 카메라 시스템을 공급하는 계약을 맺었다. 유럽 최대 규모 위성 제조사들과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체결한 이 계약은, 항공우주연구원으로부터 이전받은 기술을 민간 기업이 최초로 유럽에 상업 수출한 사례다. 조 대표는 “텔레픽스가 광학렌즈를 직접 깍아서 제조하며 확보한 기술이 유럽 국가 주도 위성 사업에 본격 참여하게 된 것”이라고 의의를 설명했다.

● 별 보던 눈을 지구로… 연구원에서 창업자로


조 대표는 연세대 천문우주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대학원에서 NASA와 함께 위성 개발을 해 온 지도 교수 아래 천문 관측 기기 설계와 데이터 분석을 익혔다.

2006년 KIOST에 입사한 뒤 15년간 위성 개발과 운영의 전 과정을 몸소 겪었다. 프랑스 에어버스에 파견돼 천리안1호의 해양 탑재체 개발에 참여했고(2007∼2008), 2010년 6월 발사 성공 후에는 해양위성센터장으로서 위성 운영과 서비스를 이끌었다. 이어 천리안2호 개발을 위해 다시 프랑스로 건너간 2013∼2017년, 그는 유럽과 미국에서 민간 우주 스타트업들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광경을 목격했다. 조 대표는 “미국과 유럽은 민간 업체들이 나오는 상황이었다. 이게 비즈니스가 될 수 있겠다는 힌트를 그 때 얻었다”고 했다. 오랫동안 품었던 생각이 결단으로 굳어지는 순간이었다.

조 대표는 2019년 설립된 텔레픽스를 퇴직금 등을 투자해 2021년 인수했다. 인수 후 사업이 순탄하지 않았다. 우주 산업은 긴 개발 기간과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 분야였고,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우주는 여전히 낯선 영역이었다. 자금 환경의 격차는 늘 넘어야 할 벽이었다.

그는 수직계열화 전략으로 승부수를 던졌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국방과학연구소 등에서 평균 17년 이상 위성시스템 개발을 한 전문가들이 함께 했다. 위성의 ‘눈’인 광학 카메라부터 AI 처리 칩, 위성 운영, 영상 분석 소프트웨어까지 전 공정을 내재화해 품질과 비용 경쟁력을 동시에 확보한 것이다. 그 전략은 까다로운 유럽 인증과 국제 입찰 경쟁을 이겨내는 것으로 결실을 맺었다.

● ‘위성의 PC화’ 시대로

텔레픽스는 코스닥 기술특례상장을 위한 기술평가를 통과하고 기업공개를 준비 중이다. 서울 여의도 본사와 대전 대덕 연구개발 거점에 임직원 90여 명이 AI 모델 개발과 위성 하드웨어 제작에 매진하고 있다. 2024년에는 세계경제포럼(WEF) 기술선도기업 선정, 미국 정보기술(IT)가전 전시회(CES) 혁신상 수상 등의 소식을 전했고, 지난해에는 엔비디아 인셉션 프로그램 및 아마존웹서비스(AWS) 스페이스 엑셀러레이터로 선정되는 등 세계적인 인정을 받고 있다.

하지만 글로벌 위성 기업들과 경쟁하면서 기술적 차별점을 지속적으로 확보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조 대표는 “텔레픽스는 AI와 위성의 융합이라는 새로운 시장의 최전선에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동시에 보유한 희소한 기업으로서 기존 국가 위성 제작 비용의 5분의 1로 위성을 제작할 수 있는 수직계열화 구조로 성장할 것”이라고 했다.

조 대표가 꿈꾸는 미래는 위성이 PC처럼 개인용 도구가 되는 시대다. 조 대표는 “대형 컴퓨터 이후 PC가 나왔듯이 위성도 누구나 쓸 수 있는 시대가 반드시 온다”며 “미국에서 위성 영상 구독 고객의 재구독률이 97%를 넘는다는 사실은 위성 영상의 수요가 그만큼 강력하다는 방증”이라고 했다.





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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