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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끈하던 美-이란, 47년전 ‘대사관 444일 인질극’ 뒤 최악 앙숙

입력 | 2026-03-02 01:40:00

[트럼프, 이란 하메네이 제거]
양국 70여년 굴곡진 역사 주목
‘원유 개발-소련 저지’ 동맹관계… 이란 혁명뒤 테헤란 사태로 단교
부시땐 “악의 축” 본격 경제제재… 트럼프, 핵합의 파기하며 압박




이란 초등학교 최소 148명 숨져 지난달 28일(현지 시간)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을 받은 이란 남부 호르모즈간주 미나브의 한 여자초등학교에서 구조대원과 주민들이 처참히 파괴된 건물 잔해를 수색하고 있다. 당시 수업을 듣던 여학생 170여 명 중 최소 148명이 숨졌다. 미나브=AP 뉴시스

미군 공습에 따른 이란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의 사망으로 갈등과 화해를 반복한 양국의 굴곡진 역사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미국과 이란은 친(親)미 성향인 팔레비 왕조(1925∼1979년) 때만 해도 미국 에너지 업체의 이란산 원유 개발, 옛 소련의 남하 저지, 이란의 서구식 근대화 등을 매개로 굳건한 동맹 관계를 형성했다.

그러나 1979년 2월 이란의 이슬람 혁명, 같은 해 11월∼1981년 1월 이란 혁명세력의 테헤란 주이란 미국대사관 444일간 점거 등을 기점으로 돌이킬 수 없는 앙숙이 됐다. 2002년 조지 W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이 이란, 이라크,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규정한 것 또한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란 역시 미국을 ‘큰 사탄’, 미국의 핵심 동맹인 이스라엘을 ‘작은 사탄’으로 규정하며 군사 외교 경제 분야의 충돌을 반복해 왔다.

● 이란, 냉전 때 美 최고 중동 우방

1920년대부터 제2차 세계대전 직후까지 미국은 이란을 적극 지원했다. 이란이 세계 4위 원유 보유국이며, 옛 소련의 중동 지역 영향력 확장 저지에 긍정적이란 점을 감안한 것이었다. 그러나 양측의 균열은 1951년 반(反)외세, 자원 국유화, 민족주의 등을 주창한 사회 민주주의 성향의 모하마드 모사데크 총리가 집권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모사데크 총리가 이란 내 공산세력을 지원하자 미국은 1953년 영국과 공조해 쿠데타를 지원했다. 그 결과 모사데크 총리가 실각했고 팔레비 왕조의 초대 황제 리자 샤 팔레비의 아들 무함마드 리자 팔레비가 즉위했다.

팔레비 왕은 미국과 군사안보 협력을 맺으며 강력한 친미 노선을 걸었다. 비밀 경찰 사바크 등을 통해 반대파도 잔혹하게 탄압했다. 이 여파로 민심이 이반하며 1979년 왕조가 붕괴하고 이슬람 혁명에 따른 신정일치 체제가 들어서자 양국 관계 또한 급변했다.

특히 이슬람 혁명 세력의 테헤란 미국대사관 점거 사건이 결정적이었다. 당시 미국은 이란의 요청에도 암 치료를 명목으로 미국에 입국한 팔레비 왕의 신병 인도를 거부했다. 왕조가 붕괴돼 이란을 장악하고 초대 최고지도자에 오른 루홀라 호메이니는 미국을 ‘큰 사탄’으로 부르며 강한 반감을 드러냈다.

이란 혁명 세력은 미국 외교관과 국민 52명을 인질로 억류하며 세계 최강대국 미국의 자존심을 박살냈다. 1980년 4월 지미 카터 미 행정부는 최정예 특수부대를 동원한 ‘독수리 발톱’ 구출 작전을 감행했으나 미군 사상자만 남긴 채 실패했다. 1980년 이라크와의 전쟁 발발 여파로 미국과의 추가 갈등을 감당할 여력이 없었던 이란은 444일 만에 인질을 풀어줬다. 이후 양국은 단교했다.

이후에도 양국의 크고 작은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1983년 이란의 지원을 받는 레바논의 시아파 무장단체 헤즈볼라가 수도 베이루트의 미 해병대 사령부를 공격했다. 이 여파로 미군 241명이 사망했다. 1988년 미 해군 순양함 ‘빈센스’함이 이란 여객기를 군용기로 오인해 격추시켜 290명의 이란인이 숨졌다.

미국은 1984년 이란을 테러 지원국으로 지정했고, 1987년에는 모든 이란산 제품 수입을 금지하고 대이란 수출 일부도 제한했다. 1995년 빌 클린턴 당시 미 행정부는 이란과의 무역 및 금융 전면 금지령을 내렸고 미국 기업이 아닌 기업이라도 이란 정권과 거래할 경우 제재를 가하는 ‘2차 제재’ 개념을 도입했다. 2002년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은 이란을 ‘악의 축’으로 지목했다. 같은 해 이란의 핵 개발 의혹이 본격화하며 서방의 경제 제재도 본격화됐다.

2009년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얼어붙은 양국 관계는 잠시 해빙 조짐을 보였다. 2013년 오바마 전 대통령은 개혁파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의 취임을 축하하며 그와 통화했다. 2015년 이란이 우라늄 농축 등 핵무기 개발을 중단하면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서방 5국이 단계적으로 대(對)이란 경제 제재를 푼다는 ‘이란핵합의(JCPOA)’ 또한 타결됐다.

● 트럼프 집권 후 관계 악화 일로

하지만 이란에 적대적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7년 집권하고 대이란 강경 노선을 고수하자 양국 관계는 다시 얼어붙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핵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했고 이란산 원유 수입 금지 등 각종 경제 제재를 부활시켰다. 2019년에는 하메네이의 친위 군사조직인 혁명수비대를 테러조직으로 지정했다.

이에 이란은 농축 우라늄 생산을 확대했고, 농축 수준도 60%까지 끌어올리며 강 대 강 대응에 나섰다. 2020년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미국의 드론 공습으로 가셈 솔레이마니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이 사망하자 이란은 미군 기지에 미사일을 발사하며 보복했다. 2021년 1월 조 바이든 전 대통령 취임 뒤 핵합의 복원을 시도했지만 성과는 없었다.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 재집권 뒤 미-이란 관계는 악화 일로를 걸었다. 같은 해 6월에는 미 역사상 최초의 이란 본토 공격이 있었고, 미국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란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여 왔다.



안규영 기자 kyu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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