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이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의 사망을 공식 확인하고 항전 의지를 다졌다. 테헤란=AP 뉴시스
지난달 28일(현지 시간) 미국과 이스라엘의 합동 공습으로 숨진 이란 최고 지도자 알리 하메네이를 두고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내린 논평이다. 그는 1989년 6월 집권 후 37년간 신정일치 국가 이란을 정치적, 종교적으로 모두 장악한 뒤 무소불위 권력을 휘둘렀다.
하메네이는 핵과 미사일 개발은 물론이고, 레바논의 무장단체 헤즈볼라, 예멘의 시아파 반군 후티,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 등 친(親)이란 성향의 이른바 ‘저항의 축’을 지원하며 반미·반이스라엘 전선을 구축했다. 또 이란의 군사력을 대외적으로 과시해 왔다. 다만 그 과정에서 민생을 도외시하고 반대파를 잔혹하게 탄압해 오래전부터 국내외에서 큰 비판을 받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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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메이니 측근…북한과도 우호적 관계
이란의 최고지도자로 37년간 군림한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86)가 28일(현지 시간)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에 사망했다. 사진은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가 지난해 9월 23일(현지 시간) 이란 TV를 통해 연설하고 있는 모습. 2025.09.24 테헤란=AP 뉴시스
호메이니가 1964년부터 해외 망명 생활을 할 때 하메네이는 이란에 남아 무장 성직자 조직을 관리하며 투옥, 고문, 유배 생활을 견뎠다. 1979년 이슬람 혁명 성공 뒤 호메이니가 귀국하며 최측근으로 부상했다. 대통령으로 활동하던 시기(1981~1989년)에는 이라크와의 전쟁을 이끌었고, 1989년 6월 호메이니 사망 뒤 최고지도자에 올랐다.
하메네이는 최고 지도자 등극 한 달 전인 1989년 5월에는 북한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 북한 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또 2013년 이란을 찾은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도 면담하는 등 북한과 밀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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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으로는 부인과 아들 넷, 딸 둘이 있다. 딸 중 한 명은 이번 공습으로 숨졌다. 한때 그의 차남 모즈타바(57)가 차기 최고 지도자 후보군으로도 거론됐지만 권력 세습에 대한 안팎의 비판으로 세습이 이뤄지진 못했다. 하메네이 일가는 1979년 혁명 당시 몰수한 자산을 관리하기 위해 만든 비밀 조직 ‘세타드’를 관장하며 막대한 부를 쌓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자산은 지난해 말 반정부 시위 발발 후 이미 해외로 빼돌렸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 경제난-장기 집권 여파로 정권 붕괴 예정된 수순
하메네이는 신정체제 수호를 위해 창설된 최고 지도자 직속 군사 조직 ‘이란 혁명수비대’를 통해 반대파 숙청과 강경 대외정책을 밀어붙이며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했다. 국경 방어가 목적인 정규군과 별도의 조직인 혁명수비대는 ‘정부 위의 정부’로 불릴 만큼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다.
또 혁명수비대를 통해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을 적극 가동했다. 최종적인 핵 개발은 이뤄내지 못했지만 탄도미사일의 경우 중동 패권을 놓고 경쟁해 온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 튀르키예는 물론이고 일부 남유럽과 서유럽까지 사정권에 둘 수준으로 발전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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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윤 기자 asa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