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명장 문숙공 윤관의 초상화. 사진 출처 국가유산포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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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영 역사작가
여진 정벌군은 예종 2년(1107년) 11월 말에 17만 대군을 동원해 북방으로 진군했다. 선왕 숙종 때부터 여진을 정벌하겠다는 뜻을 세우고 병사들을 훈련시켜 왔다.
북방의 강자였던 발해가 멸망한 후, 발해의 지배하에 있던 여진족은 부족별로 세력 다툼을 벌였는데, 그중 완안부가 두각을 드러냈다. 숙종 9년(1104년)에 완안부가 다른 부족을 공격한다는 이유로 고려의 정주성까지 군사를 이끌고 나타났다. 완안부의 진짜 목적이 고려 침공에 있다고 본 고려 조정은 따끔한 맛을 보여주고자 했다. 그러나 출동한 고려군이 오히려 여진에 대패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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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것은 긴 전쟁의 시작에 불과했다. 고려는 동북면(지금의 함경도) 일대가 몇 군데의 길로 연결돼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요충지에 성을 세우면 성들이 서로를 도와주면서 여진의 역공을 막아낼 수 있으리라 여겼다. 하지만 고려인으로서 가본 적이 없던 그곳은 생각과 전혀 달랐다. 고려인들이 모르는 샛길들이 무수히 뚫려 있었고, 이 때문에 성들은 동시에 여진족의 공격을 받게 돼 서로를 도와줄 수가 없었다.
윤관은 출정을 앞두고 기만 전술을 펼쳤다. 여진족 추장들을 초청해 한자리에 모은 뒤 400여 명을 몰살시켜 버렸다. 공격 대상의 지도부를 일거에 제거해 조직적인 저항을 없애고 신속한 진군이 가능하게 한 것이었지만, 이는 여진족의 극심한 반발을 불러왔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완안부가 이들을 지원하고 나서자, 이들은 완안부의 지휘를 받아들이게 됐다. 완안부의 힘은 커졌고,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당시 대국이던 거란도 이 전쟁에 의심의 눈초리를 던지는 등 국제 관계도 나빠지기 시작했다. 여진 쪽에서 충실히 조공을 바치겠으니 땅을 돌려달라고 요청하자, 긴 전쟁에 지친 고려도 결국 화친을 받아들였다. 1109년 7월, 9성을 반환하면서 전쟁이 끝났다.
고려는 체면을 살리긴 했지만, 수많은 목숨을 바치고 국력을 기울였음에도 한 치의 땅도 넓히지 못했다. 또한 9성에 이주시킨 백성들을 다시 돌아오게 해야 하는 등 엄청난 출혈을 본 전쟁이었다. 물론 길게 보면 고려군의 위용을 떨친 것도 사실이어서, 여진족은 금나라를 세운 뒤 고려와 전쟁을 일으키지 못했다.
고려 말 공민왕 때 원나라에 빼앗겼던 쌍성총관부를 되찾고 9성 지역을 통치하던 합란부까지 차지하게 되는데, 이성계가 여진족에게 인망이 높았기에 쉽게 공략할 수 있었다. 윤관 때 경험한 전쟁을 통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잘 알게 된 셈이다. 실패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훗날의 승리를 위해 저장되는 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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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영 역사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