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젤렌스키 위기는 ‘코미디언 인맥’을 측근에 앉히면서 시작됐다

입력 | 2026-02-18 17:18:00


AP 뉴시스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이 24일로 4년째를 맞는다. 전쟁 리더로 우크라이나 ‘영웅’으로 떠올랐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4년 전과 달리 큰 정치적 위기에 봉착한 모양새다. 그의 현재 지지율은 60% 정도. 하지만 최근 여론조사에서 우크라이나 국민의 절반 이상은 전쟁이 끝나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물러나거나 재판을 받아야 한다고 답했다. 대통령 선거가 실시될 경우 젤렌스키 대통령이 발레리 잘루즈니 전 우크라이나군 총사령관에게 큰 격차로 질 거라는 여론조사도 나오고 있다.

● 부패 척결 한다더니..정부 요직 채운 ‘코미디언 인맥’

젤렌스키 대통령은 코미디언 출신으로 대통령이 됐다. 2015년 방영된 TV 드라마 ‘국민의 종’에서 부정부패를 비판하다 인기를 얻어 대통령이 되는 교사 역을 맡았는데, 이 TV 속 ‘반부패 전사’ 이미지가 부패가 만연하던 우크라이나 정계에서도 잘 먹혔던 것. 결국 그는 2019년 진짜 대통령이 됐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연줄 정치와 권력형 인맥은 안된다(No to nepotism and friends in power)”라는 슬로건으로 대통령이 된 그는 취임하자 마자 약속을 깨고 자신의 친구들로 정부 요직을 채웠다. 젤렌스키가 과거 몸담았던 코미디 극단인 ‘크바르탈 95’와 관련된 15명이 고위 공직자가 됐다. 결과적으로 영화제작자가 대통령실 비서실장을, TV 프로그램 감독 출신이 국가정보국장을 맡게 됐다.

믿을 만한 사람들로 주변을 채워야 한다는 이유였다. 영 타임스는 잘 아는 사람만 믿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성격이 큰 영향을 줬다고 전했다. 타임스가 인터뷰한 전직 정부 관료는 “젤렌스키 대통령은 불신이 심하고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사람들만 의지한다”며 “크바르탈 95 관련자들은 젤렌스키 대통령을 신처럼 여기고, 그에게 복종한다”고 말했다.

집권 여당이 된 ‘국민의 종’이 2017년 창당된 신생정당인 것도 한몫했다. 2019년 4월 젤렌스키 대통령이 막 선거에서 이겼을때, 국민의 종은 의회에 1석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 우크라 뒤흔든 측근 부패 스캔들….‘오른팔’ 비서실장 사임

우크라이나 정계를 뒤흔든 부패 스캔들은 극단 ‘크라브탈 95’의 공동소유주이자 젤렌스키 대통령의 사업파트너였던 티무르 민디치가 입건되면서 불거졌다. 민디치가 우크라이나의 원자력공사 에네르고아톰의 고위 간부 등과 함께 협력사들에게 정부 계약 금액의 10∼15%에 해당하는 리베이트를 조직적·체계적으로 받아왔다는 것이다.검찰은 민디치가 이 과정에서 “대통령과의 우호적 관계를 이용했다”고 보고 있다. 특히 민디치가 검찰의 압수수색 전 해외도주 하면서 ‘민디치에게 수사 정보가 유출된 것이 아니냐’, ‘젤렌스키 대통령이 그를 비호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확산되기도 했다.

이 사건은 정·재계 핵심 인사들이 용의자들의 뒷배를 봐주거나 범행을 묵인했다는 의혹으로 확산했다. 이 과정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의 측근들이 지목을 받았다. 대표적인 게 안드리 예르마크 비서실장이다. 그는 검찰의 압수수색을 앞두고 지난달 결국 사임했다.

예르마크 비서실장은 젤렌스키 행정부의 막후 실세로 여겨져 왔기에 파장이 컸다. 그는 젤렌스키 대통령이 참석하는 모든 회의에 참석하며 사실상 한몸처럼 일해왔다. 평화 회담 주선, 내각 인선, 군사 작전 등 대내외 현안과 관련된 의사 결정 과정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젤렌스키와 가까운 인물이기도 했다. 우크라이나의 한 고위 관료는 둘의 사이에 대해 “함께 운동하고 술을 마시며 모든 명절을 함께 기념한다”며 “그들은 서로에 사생활은 물론 모든 것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예르마크 비서실장은 부패 의혹에 대해서는 여전히 부정하고 있다. 이외에도 헤르만 할루셴코 법무부 장관과 스비틀라나 후린추크 에너지부 장관 등이 논란으로 사임했다.

● 대선 피할 수 없는 임기 끝난 대통령

젤렌스키 대통령은 대통령의 임기는 지난해 5월로 이미 끝났다. 이후 전쟁 중이라는 이유로 줄곧 대선 실시를 거부했지만 최근 결국 대선 수용 의사를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줄곧 그의 정당성을 문제삼으며 대선을 요구해왔고, 트럼프 행정부가 주도하는 종전 협상 초안에도 대선 계획이 담겨 있다. 평화 회담이 곧 우크라이나 대선으로 이어진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우크라이나 현지 매체 키이우 포스트는 사설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이 훌륭한 전시 지도자였다는 점은 인정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실제로 2022년 2월 암살 위협에도 수도 키이우를 떠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며 전세계로부터 관심을 받았다. “찰리 채플린이 윈스턴 처칠이 됐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였다.

다만 악재는 계속되고 있다. 러시아는 평화회담 조건으로 젤렌스키 대통령이 여러차례 거부해온 돈바스 이양을 요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지난달 말에는 우크라 집권 ‘국민의 종’에서 여러 의원들이 표결의 대가로 뇌물 수수를 했다는 새로운 부패 의혹도 제기됐다.


김보라 기자 purple@donga.com


트랜드뉴스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