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기획전 ‘소멸의 시학: 삭는 미술에 대하여’
끝내 분해되고 소멸하는 작품 50여 점을 선보이는 국립현대미술관 기획전 ‘소멸의 시학: 삭는 미술에 대하여’가 지난달 30일 개막했다. 이른바 ‘불후(不朽·썩지 아니함)의 명작’을 보관하고 그 가치를 유지하려 애쓰는 미술관의 역할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전시다. 이주연 미술관 학예연구사는 “우리말 ‘삭다’는 발효돼 맛이 든다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며 “썩는다는 부정적 뉘앙스를 넘어 작품을 관람할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
● 썩어가는 과정 또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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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소멸의 시학’전에 전시된 아사드 라자의 ‘흡수’. 서울에서 나온 폐기물로 토양을 만들었다. 분해와 소멸에 내재된 공동체성을 강조한 작품으로, 관람객은 이 흙을 조금씩 집에 가져갈 수 있다. 뉴시스
독일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댄 리의 ‘목격자’ 역시 세월을 품었다. 2022년부터 세계 각지에서 전시되는 동안, 하얗던 직물은 누르스름하게 빛이 바랬다. 도자기에 담긴 액체는 발효돼 쿰쿰한 냄새마저 풍긴다. 작가는 앞서 “2026년이 지나면 이 작품을 보관하지 않겠다”고 밝혔다고 한다. 곰팡이를 동반한 이 작품을 누군가 구매하지 않으면, 작품은 흙으로 돌아가거나 재료로 재사용될 운명이다. 어쩌면 전시를 찾은 관람객들은 이 작품의 마지막 ‘목격자’가 될 가능성도 있다.
● 미술관은 작품의 ‘보호자’
흥미로운 건 이 작품이 보관되는 방식이다. 보관 책임자인 영국 테이트 미술관은 2023년 이 작품의 ‘소유자’가 아닌 ‘보호자(custodian)’가 되기로 했다. 미술품 역시 삭을 수 있으며, 판매나 소유의 대상이 아님을 받아들인 것. 13년이 지나면 작품의 보관 방식에 대해 작가와 다시 협의한다고. 미술관이 작품을 독점 소유하고, 작가 사후에도 영속하게 하는 기존의 소장 방식에서 벗어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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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이 분해돼 가는 모습을 ‘2번째 삶’으로 인식할 수 있고, 기억에 의해 매개된 그 2번째 삶에 사랑이 머문다.” 5월 3일까지.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