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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화가’ 루벤스, ‘가난했던 천재’ 피카소… 화가도 생활인이었다[양정무의 미술과 경제]

입력 | 2026-01-25 23:03:00

큰 부를 일군 직업 화가들




바로크 회화를 대표하는 화가 루벤스의 46세 자화상(1623년). 사진 출처 Royal Collection Trust

《최근 소셜미디어에서 눈길을 끄는 글을 접했다.

요즘 많이 보이는 콘텐츠인 자산 규모나 부자 순위를 매기는 글이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그 대상이 철학자였다.

우리는 위대한 철학자를 심오한 사유의 세계를 그려낸 초월적 존재로 상상한다.

그러나 그들 역시 먹고살기 위해 경제 활동을 해야 했던 사람들이 아니었던가.

그러니 철학자들의 삶을 이들이 처한 경제적 조건 속에서 다시 생각해보는 시도는 의미 있게 다가왔다.》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글에서는 철학자들 역시 ‘수저 계급’으로 나뉘어 있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비트겐슈타인은 금수저에 속하고, 소크라테스와 니체는 흙수저로 묶였다. 사실 순위 대부분은 추정에 가까웠다. 특히 고대 철학자의 경우 그들의 자산을 정확히 추산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플라톤은 아테네의 귀족 출신이라 상당한 부를 가졌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가 ‘아카데미아’라는 학교를 설립해 운영한 것도 경제적 여유 덕분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정작 플라톤의 삶은 매우 검소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가정교사였기 때문에 국가로부터 연구 지원금을 무제한적으로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이 역시 기록으로 확인하기는 어렵다.

현대 분석철학의 거장 비트겐슈타인은 금수저다. 그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철강 재벌 집안에서 태어났다. 오늘날 가치로 환산하면 거의 조 단위에 이르는 재산을 상속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그는 철학적 사유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대부분을 기부했다. 이후 그는 초등학교 교사, 정원사와 같은 직업을 전전하며 소박한 삶을 살았다.

흙수저 그룹에서 단연 눈에 띄는 인물은 소크라테스다. 그는 자신의 지식을 놓고 대가를 받는 행위를 수치로 여겼다고 한다. 그 결과 생계는 늘 불안정했고, 그의 아내 크산티페가 생활고로 남편을 원망했다는 일화가 지금까지도 전해진다. 니체도 경제적 곤궁 속에서 사유를 이어간 인물이다. 24세에 대학교수가 되어 생활이 안정됐지만, 34세에 건강 문제로 사임하고 이후에는 연금에 의존해 근근이 삶을 이어 나가야 했다.

생을 마감할 때까지 부자였던 루벤스가 머물던 벨기에 안트베르펜의 저택 ‘루벤스 하우스(Rubenshuis)’. 사진 출처 루벤스 하우스

이런 사례들을 짚어 보니 심오한 사상을 설파했던 철학자들 역시 예외 없이 냉정한 경제적 조건 속에서 살아야 했다는 사실이 새삼 생생하게 느껴진다. 그렇다면 화가들은 어떨까. 역대 화가 가운데 실제로 가장 부유했던 인물은 누구였을까. 이 질문에 답하다 보면 미술의 세계도 좀 더 현실감 있게 와닿을지 모른다.

여기에는 전제가 필요하다. 왕족이나 귀족 출신 화가는 제외하고, 작품 활동을 통해 부를 모은 직업 화가로 범위를 제한해야 한다.

예를 들어 중국 송나라의 8대 황제 휘종은 회화 실력이 탁월했는데, 그의 그림은 오늘날까지도 동아시아 미술사에서 빠짐없이 언급된다. 실제 작품을 보면 우아한 표현력이나 치밀한 완성도에서 당대의 직업 화가에 뒤지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리 그가 회화사적으로 중요하더라도, 그가 얻은 부는 그림을 통해 축적된 것이 아니기에 부자 화가 순위를 매길 때는 제외해야 할 것이다. 우리 역사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찾을 수 있다. 고려의 공민왕은 왕비 노국공주의 초상화를 직접 그릴 정도로 뛰어난 필력을 지녔다고 한다. 그러나 공민왕 역시 그림으로 부를 이룬 것이 아니기에 이번 순위에서는 뺐다.

이렇게 직업 화가들만을 놓고 보면, 현대 이전의 화가들 가운데 명확히 떠오르는 이름이 있다. 루벤스(1577∼1640)다. 루벤스는 오늘날의 벨기에 안트베르펜 출신이지만, 유럽 전체를 무대로 활동한 국제적인 인물이었다. 당시 유럽의 왕족과 귀족 상당수가 그의 고객이었다. 그 결과 루벤스는 명성에 걸맞은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지금도 안트베르펜에는 그의 집이 남아 있다. 규모로 보면 대저택에 가깝다. 기록에 따르면 루벤스가 이 집을 짓는 데 약 2만4000길더를 들였다. 당시 일반적인 주택 가격이 1000길더 수준이었음을 감안하면, 스무 배 이상 호화로운 저택이었다. 루벤스의 부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생애 말년에 편안한 노후를 위해 도시 근교에 거대한 성 한 채를 구매한다. 이때 지불한 금액은 약 9만 길더로, 오늘날 가치로 환산하면 최소 100억 원대에 달한다.

기록에 따르면 루벤스의 연간 소득 역시 귀족에 필적했다. 당시 귀족들의 연수입이 대략 6000∼1만4000길더로 알려져 있는데, 루벤스는 그림 판매만으로 연간 3만 길더 이상을 벌어들였다. 여기에 골동품 거래 등 부수입까지 더해지면서 그는 귀족 이상의 경제력을 가진 화가였다. 게다가 그는 영국과 스페인의 외교 갈등을 조율한 공로로 두 나라에서 기사 작위까지 받았다. 이는 그가 직업 화가를 넘어선 인물이었음을 보여준다. 루벤스 하면 따라붙는 ‘화가들의 왕이자 왕들의 화가’라는 평가는 결코 과장이 아닌 셈이다.

그렇다면 현대 화가 가운데 가장 큰 부를 일군 인물은 누구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어렵지 않다. 바로 피카소(1881∼1973)다.

피카소는 스페인 바르셀로나 근교 말라가라는 작은 마을에서 미술 교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20대 시절 프랑스 파리에서 가난한 유학생으로 본격적인 화가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91세로 생을 마감했을 때 그가 남긴 재산의 규모는 상상을 뛰어넘는다. 그의 유작은 회화, 조각, 드로잉, 판화를 합쳐 약 4만5000점에 이르렀고, 프랑스 남부에만 성 두 채를 포함해 여러 채의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었다. 현금과 금, 유가증권까지 포함한 그의 재산은 당시 가치로 약 1억∼2억5000만 달러, 오늘날 가치로 1조∼2조5000억 원으로 추정된다.

사실 돈은 피카소에게 일찍부터 큰 의미가 없었을 수도 있다. 2차 세계대전 직후 그가 프랑스 남부에 집을 한 채 살 때, 그가 지불한 대금은 정물화 한 점이었다고 한다. 문자 그대로 그는 미다스의 손을 가진 화가였다. 다행히 그는 돈에 매몰되지 않고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창조력을 불태웠다는 점에서 존경받을 만하다.

가장 부유한 현존 작가로 알려진 데이미언 허스트. 사진 출처 허스트 인스타그램

마지막으로 현존 화가 가운데 가장 부유한 화가는 누구일까. 영국에서 활동하는 데이미언 허스트(1965∼)는 강력한 후보 중 하나다. 그는 1990년대 초반부터 영국 현대미술의 스타로 주목받았다. 2020년 영국 선데이타임스의 추정에 따르면 그의 자산 규모는 약 3억 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그는 생과 사, 죽음과 욕망이라는 주제를 통해 현대미술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동시에 그 작업들이 치밀한 상업 전략의 일부에 불과했다는 의심도 함께 받아왔다. 화가가 돈을 많이 번다고 해서 비난받을 이유는 없다. 하지만 허스트의 경우 그가 얻은 부가 예술성의 부산물이 아니라, 작업 방식 자체와 깊이 결합돼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파격성이 예술이 아닌 돈벌이를 위한 전략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구심을 들게 한다는 것이다.

백금, 다이아몬드로 만든 허스트의 ‘신의 사랑을 위하여’(2007년). 사진 출처 국립현대미술관

예를 들어 그가 실제 해골에 수천 개의 다이아몬드를 장착해 만든 작품 ‘신의 사랑을 위하여(For the Love of God·2007년)’는 익명의 투자자 그룹에 5000만 파운드(약 992억 원)에 판매됐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실제 거래가 이뤄졌는지는 지금까지도 논쟁 중이다. 허스트가 몸값을 올리기 위해 거짓으로 거래 성사를 공표했다는 의혹이 커지고 있다.

허스트는 60대 초반이다. 그의 경력은 아직 끝나지 않았기에 그가 앞으로 남은 시간을 어떻게 채워갈지는 여전히 열려 있다. 공교롭게도 그가 3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아시아 최초의 대규모 개인전을 연다. 이번 전시를 통해 허스트가 자신을 둘러싼 오해, 즉 그가 상업성만을 추구하는 세속화된 작가라는 오명을 벗고 현대미술의 철학적 가치를 새롭게 입증할 수 있을까. 이는 중요하게 지켜볼 관전 포인트다.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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