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석기시대 맥가이버칼, 주먹도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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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한탄강은 왜 주먹도끼 메카일까
전곡리 주먹도끼 이후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전역에서 수많은 구석기시대 발굴이 이뤄졌다. 남한에서만 수백 개의 구석기 유적이 발굴됐지만, 주먹도끼는 중부 내륙이나 영·호남 지역에서 일부 발견됐을 뿐 그 수도 매우 적다. 국가도 없었던 30만∼20만 년 전에 사람들은 왜 이렇게 좁은 지역에서만 주먹도끼를 집중적으로 사용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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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곡리에서 만든 주먹도끼들은 유럽이나 아프리카의 것에 비하면 많이 투박하고 거칠지만, 사실 그들 못지않은 정성이 들어간 것이다. 재료의 핸디캡을 딛고 임진·한탄강 유역의 사람들은 주먹도끼의 전통을 유지했으니, 배기동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이 그들을 ‘전곡리안(Jeongokrian)’이라 명명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왜 전곡리의 구석기인들은 자신들만의 선택을 했을까. 전곡리를 평생 연구해 온 이한용 전곡선사박물관장은 임진·한탄강만의 독특한 지질학적 특성을 꼽는다. 수십만 년 전 북한 평강 오리산에서 분출한 뜨거운 용암이 옛 한탄강 물길을 따라 100여 km를 흘러내리며 거대한 현무암 대지를 형성했다. 이후 수만 년의 세월 동안 강물이 이 대지를 깎아내며 수직 절벽과 협곡을 만들어 독특한 환경을 조성했고, 그 절벽 아래로 널리 펼쳐진 임진·한탄강의 자갈밭이라는 환경이 동아시아 주먹도끼의 메카를 만든 것이다.
세계 최대의 전곡리 주먹도끼
2024년 경기 연천군 전곡리에서 출토된 길이 42cm, 무게 10kg의 대형 주먹도끼를 강인욱 교수가 들어 보이고 있다. 이한용 전곡선사박물관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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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이런 ‘고행’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최근 유럽 구석기시대 연구자들은 구석기인들에게도 심미적 욕구가 있었고 사회적 과시 역시 존재했다고 본다. 완벽한 좌우 대칭을 이루는 주먹도끼는 제작자의 머릿속에 이미 아름다움을 느끼는 형상이 존재했음을 의미한다.
심지어 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는 이를 ‘섹시한 주먹도끼 가설’로 설명하기도 한다. 파푸아뉴기니의 아벨람족은 실제로 먹을 수도 없는 2∼3m가 넘는 거대한 얌(yam)을 재배하며 경쟁을 벌인다. 전혀 실용적이지 않은 공작새의 화려한 꼬리처럼, 생존에 불리할 만큼 거대하고 아름다운 도구를 만들어 자신의 건강함과 지적 우위를 집단 내에 과시했다는 것이다. 물론 아직은 가설이지만, 원시인에 대한 우리의 선입견은 접어둬야 할 것 같다.
전곡리의 주먹도끼는 단순히 서구의 이론을 반박했다는 상징성을 넘어선다. 이제 관심은 전곡리안이라 불렸던 임진·한탄강 유역의 독특한 사람들의 삶으로 옮겨가고 있다. 이들은 주변에 흔한 돌감이 있음에도 굳이 다루기 힘든 화강편마암을 선택해 실용성을 무시한 채 자신들만의 기술적 전통을 극대화했다. 이는 전곡리안이 단순히 생존을 위해 도구를 만든 것이 아니라, 타 지역과 구별되는 자신들만의 시그니처이자 의례적 상징물로서 주먹도끼를 만들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제 전곡리 주먹도끼는 세계 고고학사의 사건을 넘어 한반도 초기 인류의 독창적 삶을 보여주는 유적이 되고 있다.
전곡리안, 그들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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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바탕으로 최근에는 약 100만 년 전 호모에렉투스에서 분리된 동아시아 고유의 고인류가 존재했다는 ‘롱기 클레이드(Longi Clade)’ 가설이 제기되고 있다. 앞으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전곡리안은 영구인과 호모 롱기 사이에 존재하며 한탄강에서 주먹도끼를 만들고 현생 인류로 진화해 가던 여러 집단 가운데 하나였을 가능성이 크다. 유라시아 대륙을 가로질러 만주와 한반도를 하나의 생태적 회랑으로 누비던 그들의 실제 모습이 밝혀질 날도 머지않아 다가올 것이다.
전곡리가 말하는 우리의 다양성
전곡리안들은 규암이라는 척박한 재료의 한계를 외부 기술의 맹목적 수용이 아닌, 독자적인 기술적 응전으로 돌파해 냈다. 동아시아에서 드물게 한탄강 유역이 주먹도끼의 메카가 된 배경에는 이처럼 유라시아 전역의 특징이 모여들고, 이를 현지에 맞게 재창조했던 한반도의 개방성과 적응력이 자리하고 있다.
우리는 흔히 한반도를 대륙의 끝자락에서 외부 문화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인 종착지로 오해하곤 한다. 그러나 임진·한탄강 유역에 집중된 주먹도끼의 존재는 전혀 다른 역동성을 시사한다. 당시 한반도는 단순히 고립된 땅이 아니라, 중국 대륙과 일본 열도를 잇는 거대한 육교이자 다양한 고인류가 교차하던 생태적 회랑이었다.
수십만 년 전 이 땅에 거주했던 전곡리안들은 비록 현재 한국인의 직접적인 생물학적 조상은 아니지만,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크다. 전곡리 주먹도끼는 단순한 유물을 넘어 인류가 환경적 제약을 극복하며 스스로 개척한 생존의 틈새, 즉 ‘기술적 니치’의 결정체다. 최근 대중적으로 회자되는 ‘혁신 유전자’의 시작은 어쩌면 거창한 문명의 탄생이 아닐지도 모른다. 오히려 척박한 재료의 한계를 독자적인 기술로 돌파하며 자신들만의 생존 공간을 넓혀 갔던 전곡리안의 고집스러운 적응이 그 원형일 것이다. 인류는 위대해서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환경과 끊임없이 조율하며 살아남았기에 위대해졌다. 수십만 년 전 한탄강의 거친 돌 속에 마음을 심었던 그들의 혁신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