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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 꼴찌에서 연 매출 70억원 회사 대표로… “나를 키운 건 8할이 다정함”[손효림의 베스트셀러 레시피]

입력 | 2025-11-27 11:00:00




많은 사람들에게 뜨거운 사랑을 받는 베스트셀러. 창작자들은 자신이 만든 콘텐츠가 베스트셀러가 되길 꿈꾸지만, 실제로 실현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 이 희귀한 확률을 뚫고 베스트셀러가 된 콘텐츠가 탄생한 과정을 들여다본다. 창작자의 노하우를 비롯해 이 시대 사람들의 욕망, 사회 트렌드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중학생 때 전교 꼴찌였다. 마을버스에서 내려 어두운 골목길을 한참 동안 올라가야 하는 집에 살기도 했다. 자가 면역 질환인 루푸스 진단을 받고 매일 12알의 약을 복용하면 얼굴이 달덩이처럼 부어올랐다. 23세에 창업해 지금은 직원 40여 명에, 연 매출 70억 원이 넘는 회사 대표가 됐다. 에세이 ‘다정한 사람이 이긴다’(필름)를 쓴 이해인 작가(32)다. 그는 “외롭고 힘들 때마다 나를 보듬어 주었던 어른들과 친구들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지금의 나를 만든 건 다정함”이라고 말한다.      

팍팍한 환경에서도 순간순간 느꼈던 사람들의 온기를 기억하며 걸어온 길을 담은 이 책은 올해 8월 출간된 후 3개월 만에 7만 권 넘게 판매됐다.(국내 출판계의 베스트셀러 기준은 책 판매량 1만 권이다.) 이 작가와 전수현 필름 출판팀장(39)을 서울 영등포구 필름 출판사에서 17일 만났다.

에세이 ‘다정한 사람이 이긴다’를 쓴 이해인 작가가 북토크에서 독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필름 제공

이 작가는 “엄마가 편찮으셔서 생후 2년간 큰이모가 키워주셨고 고모네, 할머니네 등 여러 집에서 자란 ‘떠돌이 아기’였다”고 했다.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고 꾹꾹 누르며 자랐어요. 하지만 유치원을 마친 후 늘 찾아가던 문구점에서 제게 푹신한 의자를 내주고 본인은 딱딱한 의자에 앉았던 주인 아저씨, 갈 곳 없던 언니와 제게 말없이 구석 한 편을 내어준 책방 언니 등을 통해 넓은 마음을 배울 수 있었어요.”

힘들었던 순간들은 돌아보니 자산이 됐다고 말한다.

“일본 소설가 소노 아야코는 ‘불행이 재산’이라고 했어요. 단단히 간직해 둔다면 언젠가 반드시 큰 힘이 돼 자신을 구원한다고요. 그 때 깨달았죠. ‘아, 나는 생각보다 부자였구나. 쌓아온 재산이 많구나.’ 그렇게 여기니까 두려움이 사라지더라고요.”

광고회사를 8개월간 다닌 그가 대학 동기와 종합광고대행사를 만들 수 있었던 건 가진 게 없었기에 가능했단다.

“손에 쥔 게 없으니 잃을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진 게 많았다면 놓기 싫어서 주저했을 것 같아요.”    


에세이 ‘다정한 사람이 이긴다’ 책표지. 필름 제공


그는 틈틈이 쓴 글과 자신의 소셜 미디어에 올린 글을 모아 원고를 정리했다. 그는 “8개월 동안 글을 쓴 후 다시 찬찬히 살펴보니 가장 힘이 센 단어이자 삶에서 제일 강력한 무기가 된 게 ‘다정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전 팀장은 “올해 힘들다고 하는 이들이 참 많았다. 그 분들에게 위로를 건네고 앞으로 나아가도록 응원하고 싶어 최대한 속도를 내 책을 만들었다”고 했다. 

제목을 정할 때 특히 많이 고심했다고 한다. 전 팀장은 “책에 담긴 메시지를 직관적으로 전달해 독자들이 책으로 손을 뻗게 만들 방법을 찾으려 애썼다”고 말했다.

20대와 30대 초반 직원들로 구성된 필름 출판사는 마케팅에 강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 팀장을 “제목을 정할 때는 물론 표지 디자인, 마케팅 방법 등을 논의하기 위해 아이디어 회의를 진짜 많이 했다. 회의할 땐 직급에 상관없이 자기 생각을 편하게 다 얘기한다”고 했다.

책이 출간된 후 판매 속도가 예상보다 훨씬 빨라 놀랐다고 한다.   

“북토크를 세 번 열었어요. 1회 때 공지를 올리자 몇 시간 만에 1000명 넘게 신청했더라고요. 작가님의 소셜 미디어 팔로어가 30만 명이 넘는 것도 영향이 있지만, 본인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은 점이 독자들에게 다가갔다고 봅니다.”

이 작가는 첫 책 ‘감정은 사라져도 결과는 남는다’(필름)를 2023년 출간했다. 이 책은 지금까지 6만 권 넘게 판매됐다. 

“첫 책에 제 얘기를 별로 담지 못해 아쉬웠어요. 더 진솔하게 저를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해 두 번째 책을 냈습니다.”

일부 독자들은 그의 이름과 시집 같은 느낌을 주는 표지로 인해 이해인 수녀의 책으로 여기기도 한다. 

“아빠가 이해인 수녀님의 시를 보고 감동 받아서 제 이름을 수녀님과 같은 이름으로 지으셨대요. 할아버지가 저의 언니를 비롯해 사촌들까지 모두 ‘나’자 돌림으로 이름을 지으셨는데 아빠 덕분에 저는 수녀님과 같은 이름을 갖게 됐어요.” 


영화 ‘심야식당’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마스터(왼쪽)는 손님의 추억이 담긴 소박한 음식으로 위로를 건넨다. 영화사 진진 제공


책에는 그가 겪은 여러 고비가 담겼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당차고 밝다.

“글을 쓰면서 제가 겪은 불행을 사탕 까듯이 하나하나 열어보게 됐어요. 엄마가 자주 입원하셨는데요,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엄마의 목소리에서 애절한 마음을 느꼈던 게 떠올라요. 저를 업고 자장가를 부르던 아빠의 서툰 사랑, 문방구 아저씨와 책방 언니의 마음도요. 떠돌아다니고 외롭게 자랐지만 제 삶 곳곳에는 사랑이 놓여 있었어요.”      

그는 학창 시절 공부는 뒤로 하고 분위기를 띄워주는 학생이었다고 한다. 중학교 2학년 때 수학 시험에서 0점을 받은 적도 있다. 당시 담임 선생님이 수학을 담당했다.

“선생님이 채점한 시험지를 나눠주셨는데 저만 못 받았어요.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선생님이 제 시험지를 흔들며 ‘해인이가 0점을 받았어. 이건 100점보다 더 어려운 확률이야. 정말 대단하지 않니?’라고 하시는 거예요. 친구들은 박수를 치면서 웃었고 저는 장난스레 손을 흔들며 앞으로 나가서 시험지를 받았어요. 시험으로 무거워진 분위기를 풀려고 하신 선생님과 당시 친구들의 반응은 유쾌한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그는 수학 공부를 안 해서 모두 찍었다고 한다.

“답안지에 같은 번호만 썼어도 0점은 받지 않았을 거예요. 나름대로 찍었는데 모조리 정답을 비켜갔더라고요.(웃음) 그러기가 진짜 쉽지 않잖아요? 아빠에게 자랑스레 얘기하니까 아빠는 박수를 치면서 ‘친구들에게 웃음을 주고, 이렇게 대범하면 뭐라도 되겠다’고 했어요. 아빠도 저도, 점수로 제 가능성을 매기지 않았던 것 같아요.”    

특성화고등학교에 진학했다. 당시 같은 학교에 다니던 아이돌 그룹 멤버들을 촬영하러 방송국 제작진이 왔다. 학생들도 출연하게 됐다. 흥미를 높이기 위해 그의 고민을 ‘학교 등굣길에 번호를 따여서 지각한다’는 내용으로 했다. 방송 후 그의 이름과 ‘약수동 여신’이 포털 사이트 검색어 상위권을 차지했다. 악플이 쏟아졌다. 학교 앞까지 찾아와 욕하는 사람도 있었다.

“너무 무서웠어요. 원형 탈모가 세 군데나 생겼고요. 그런데 친구들이 하교할 때 보디가드처럼 저를 보호해줬어요. 집으로 찾아와 ‘우린 네 편이야’라고 응원해주기도 했고요. 제가 무너질 때 구해주는 건 저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이라는 걸 실감했어요. 저를 모르는 타인들의 비판이나 독설에 흔들릴 필요가 없다는 것도요.”   

대학에선 미디어학을 전공했다. 그는 회사를 운영하는 게 만만치 않지만 뿌듯함을 느낀다고 한다.    

“종합광고대행사는 누군가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을 해요. 매일 문제 해결의 연속이죠. 될 때까지 매달립니다. 쉽지 않지만 재밌어요. 성공할 전략 10가지가 아니라 실패하지 않을 전략 10가지를 세워요. 일단 결정하면 뒤돌아보지 않고 합니다.”

그는 스스로에게 다정해야 한다며 자신도 이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어렸을 때의 저, 창업할 때의 저를 돌아보면 참 외로웠겠다 싶어요. 한편으로는 대견하기도 하고요. 그 때의 저를 가만히 안아주고 싶어요. 자신에게 먼저 다정하면 다른 이들의 다정함을 더 잘 보고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는 독자들과 소통하며 스스로도 성장하고 있다고 했다.

“독자들이 새로운 방식으로 제 글을 해석하는 걸 보면 놀라워요.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으며 느낀 점을 꾸준히 글로 정리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제가 다정하고 유쾌한 친구, 언니, 동생으로 기억된다면 정말 좋은 삶을 사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정한 사람이 이긴다’(필름·2025년)는….

20대에 창업해 종합광고대행사를 10년째 운영하고 있는 이해인 씨(32)가 사람들에게서 온기를 느낀 순간들과 이를 통해 얻은 힘에 대해 쓴 에세이다.  

엄마가 자주 입원해 저자는 아기 때부터 이모, 고모 등 여러 사람의 손에서 자랐다. 자가 면역 질환인 루푸스 진단을 받아 입원하기도 했다. 집안 형편도 여유롭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에게 마음을 내 준 어른들이 있었기에 외로웠던 시간도 좋은 기억으로 채울 수 있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부드럽고 친절하게 말하는 사람은 삶이 순탄하고 가진 게 많아서 그런 게 아니라고 여긴다. 그런 태도는 상처를 지나온 이들이 만들어내는 결과에 가깝다는 것. 진심 어린 태도는 타인에 대한 이해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트라우마가 있다면 극복되기 전에는 굳이 밝히지 않는 게 좋다고 말한다. 고통의 중간에 머물러 있는 이야기에는 사람들이 쉽게 공감하지 못하고, 때로는 그 상처마저도 오해받기 쉽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결핍에서 출발해, 그 끝에서 내가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 이야기가 됐을 때, 그 때 비로소 이 트라우마는 누군가에게 빛이 되고, 나에게는 자부심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회사를 운영하며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떠나보낸다. 떠나는 이가 마지막으로 건넨 말과 태도는 선명하게 남는다. 또 사람마다 관계를 맺는 속도가 다르기 때문에 이 속도 차이를 읽을 줄 알고 상대의 리듬에 자신을 맞춰주려 노력할 필요도 있다고 말한다.  

스스로에게도 다정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돌보는 게 그 방법이다. 무리해서 반짝 성취를 내기보다 무너지지 않고 계속 이어가는 게 중요하다. ‘나를 지키는 체크리스트 10’을 제시한다. △‘지금 이건 내 몫이 아니야’라고 느끼는 일을 정중히 거절했는가: 거절은 때때로 나를 존중하는 가장 단단한 선택이다 △아프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졌는가: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 당신의 고백은 약함이 아니라 용기다 등이다.   

살면서 맞는 여러 순간은 선택할 수 없을 때가 많다. 하지만 이를 어떤 태도로 대할지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20대 때 저자는 “넘어지면 뭐라도 주워서 일어나면 돼”라는 문장을 품고 살았다. 회사를 설립한 후 불안에 시달리던 그에게 창업을 함께 한 친구가 건넨 말이다. 

녹록치 않은 세상살이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말로 자신의 모습을 만들어나갈지 짚어보게 한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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