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다 칼로의 ‘꿈(침대)’
프리다 칼로의 1940년 작품 ‘엘 수에뇨(라 카마)’. 제목은 ‘꿈(침대)’이라는 뜻이다. 디에고 리베라 프리다 칼로 미술관 트러스트(멕시코시티)·아티스트라이츠소사이어티(뉴욕)·소더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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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 문화부 기자
침대, 해골 그리고 나
‘엘 수에뇨’에는 구름이 자욱한 하늘 위로 떠 있는 침대, 금색 이불을 덮고 있는 프리다, 그리고 캐노피 위에 놓인 해골이 보입니다. 해골은 꽃다발을 쥐고 있지만, 온몸에는 다이너마이트 전선이 칭칭 감겨 있습니다. 불길한 무언가가 일어날 듯한 분위기입니다.
이 그림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지붕을 사이에 두고 데칼코마니처럼 펼쳐진 닮은꼴의 프리다와 해골입니다. 두 사람의 옆으로 누운 자세부터 얼굴을 받친 두 겹 베개까지, 비슷한 형태들이 나란히 놓여 리듬을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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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처럼 떠다니는 침대, 식물 덩굴이 자라나는 이불, 지붕을 덮친 해골처럼 칼로의 작품에는 현실에서 볼 수 없는 광경들이 등장합니다. 이런 모습을 눈여겨 본 프랑스 초현실주의 예술가 앙드레 브르통(1896∼1966)은 칼로의 작품도 ‘초현실주의’라고 칭찬하며 자기의 무리에 끌어들이고 싶어했습니다. 그러나 칼로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꿈이 아닌 현실이다
칼로는 1939년 파리에서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을 만난 뒤 이렇게 말합니다.
“지적 허영과 무책임한 이론만 가득한 부패한 지식인 집단이야. 이런 예술가들과 만나느니 시장에서 토르티야를 파는 게 낫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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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수에뇨’를 봐도 신비로운 분위기는 있지만, 그림 속 오브제들은 잠자는 칼로를 비롯해 모두가 현실에 있었던 것들입니다. 칼로가 누워 있는 침대부터, 다이너마이트를 감은 해골까지, 전부 칼로가 갖고 있던 가구와 물건입니다.
우선 침대는 칼로가 인생 대부분을 보낸 장소입니다. 칼로가 18세 때 타고 있던 버스가 트램과 충돌하는 큰 사고가 났고, 이때 칼로는 쇠못이 골반을 관통한 것은 물론이고 척추와 다리도 심하게 다쳤습니다. 이후 오랫동안 고통스러운 재활과 수술을 거쳐야 했고, 평생 만성 통증에 시달렸습니다.
신체의 한계를 겪는 상황에서도 칼로는 그림을 그렸고, 가족들은 침대에 이젤과 팔레트를 놓아줬습니다. 누워 있을 때도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캐노피에 거울을 달아 주기도 했죠. 칼로는 이렇게 늘 어려움을 극복하고 무엇이든 하려는 강한 의지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의지는 역설적으로 ‘죽음이 언제나 내 곁에 있다’는 생각 덕분에 가능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칼로가 잠자면서 꾸는 ‘꿈’을 주제로 한 그림에 자기를 닮은 해골을 그려 넣은 것을 보면, 그가 ‘언제든 잠을 자다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는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유명하고 희귀한 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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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로의 조카손녀인 마라 로메오 칼로의 말입니다. 칼로는 살아있을 때는 초현실주의 예술가나 남편이었던 디에고 리베라보다 덜 유명한 작가였지만, 그가 세상을 떠나고 여성 예술가에 대한 연구가 깊어진 것과 동시에 그의 불꽃 같았던 삶이 영화로 만들어지는 등 미디어로 조명되며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또 멕시코에서 칼로의 작품을 ‘국가 문화유산’으로 지정하며, 멕시코 내부의 칼로 작품은 해외로 거래될 수 없어 희귀함이 더해졌습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에 따르면 공개 경매가 아닌 프라이빗 세일에서 칼로의 작품은 5000만 달러에서 1억 달러 이상까지 거래된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칼로의 얼굴이 크게 그려질수록 컬렉터에게 인기가 많다고도 합니다.
빈센트 반 고흐처럼 누구나 감정 이입하기 쉬운 비극적인 삶, 그것을 진솔하게 담아내고 있는 그림, 그리고 아무나 가질 수 없다는 희귀함. 이런 조건들이 더해져서 칼로의 작품은 계속해서 기록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화제의 ‘엘 수에뇨’는 내년 3월부터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MoMA), 영국 테이트모던, 스위스 바젤 바이엘러 미술관을 순회하는 기획전으로 관객을 만날 예정입니다.
김민 문화부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