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황교안이다’ 헛발질에 ‘우리가 김만배’ 지지율만 올라 鄭 “尹 어게인, 모자란 사람이자 암적인 존재”, 맞는 말 아닌가
이진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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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전 대통령의 어록 중에 “정치는 상대가 자빠지면 이긴다”는 명언이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인용해서 새삼 유명해진 말이다. 그런데 상대가 자빠지는데 이기기는커녕 지는 바보도 있다. 여당이 부동산 대책으로 자빠지고, 대장동 항소 포기로 비틀대는 동안 여당과 대통령 지지율이 오르고 국민의힘 지지율은 내려가고 있다. 떨어지는 감도 못 받아먹는 게 요즘 국힘의 정치력이다.
이탈리아 경제사학자 카를로 치폴라는 ‘인간의 어리석음에 관한 법칙’에서 인간을 현명한 인간, 순진한 인간, 영악한 인간, 어리석은 인간 네 종류로 나누었다. 개인의 행동이 본인과 집단에 득실이 되는지가 기준인데 이는 정치에도 유용한 분류법이다. 첫째, 나와 공동체 모두에 득이 되는 ‘현명한 정치’가 있다. 둘째, 사회엔 득이 되는데 난 손해를 봤다면 ‘순진한 정치’다. 노동개혁으로 독일 경제 부활의 초석을 놓고 실각한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의 노동정책이 순진한 정치다.
셋째, 개인이나 정파의 이익을 채우려 나라에 막대한 손해를 주는 ‘영악한 정치’가 있다. 여당의 사법 정치는 개인적 사법 리스크 해소를 위해 삼권분립을 훼손하는 영악한 정치다. 넷째, 자신은 어떠한 이득도 못 얻거나 심지어 손해를 보면서 공동체에 해악을 끼치는 ‘어리석은 정치’다. 나라를 위기에 빠뜨리고 패가망신한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정치가 딱 여기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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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부동산 대책 혼란과 대장동 항소 포기 국면에서 국힘이 구사한 전략은 1사 만루의 기회를 병살타로 날려 먹은 야구팀 수준이다. 역대 진보 정부의 아킬레스건인 부동산 문제는 국힘엔 ‘우리 싸움터’에서 싸워 볼 기회였지만 장 대표가 윤 전 대통령 면회 다녀온 사실을 공개하면서 싸우기도 전에 힘이 빠져버렸다. 대장동 일당에 수천억 원의 부당 이득을 챙겨준 항소 포기에 국힘은 규탄대회까지 열어 놓곤 “우리가 황교안이다” 하고 헛발질하는 바람에 “우리가 김만배다” 세력의 기만 살려줬다. 결정적 위기 때마다 지지율 방어에 나서주는 국힘이야말로 ‘찐명’ 아닌가.
어느 나라든 현명한 정치나 순진한 정치는 어렵고, 흔한 것이 영악한 정치다. 영악한 정치끼리 만나면 서로 견제가 돼 큰 탈은 나지 않는다. 하지만 영악한 정치와 어리석은 정치가 만나면 ‘헌법 존중 TF’와 ‘사법 정상화 TF’ 같은 기만적 이름의 조직이 헌정 질서를 유린해도 속수무책인 한국처럼 파국으로 치닫기 쉽다.
역사학자 티머시 스나이더는 “민주주의의 유산이 자동적으로 우리를 (폭정의) 위협으로부터 지켜줄 거라 생각하기 쉽지만 제도는 스스로를 보호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는 체제 위기를 겪었던 20세기 유럽 민주주의 국가들을 연구한 결과 사람들이 새로운 질서에 저항하기보다 놀랍도록 잘 적응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정부가 죄 없는 사람 휴대전화 들여다보고, 내 편이면 상 주고 아니면 벌주는 엉터리 신상필벌에 입법권과 예산권을 남용하는데도 별 저항 없이 안정적 지지를 보내고 있다. 새로운 질서에 놀랍도록 순응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스스로 보호하지 못하는 자유민주주의 제도를 지켜낼 수 있을까.
영악한 정치보다 나쁜 것이 어리석은 정치다. 영악한 사익 추구 정치는 정당하진 않아도 합리적이고 예측 가능해 방어할 수 있다. 그런데 자기도 큰 손해 봐가며 공동체에 해코지하는 어리석음은 비합리적이어서 예측도 반격도 어렵다. 국힘이 왜 여당의 내란 몰이가 극에 달할 계엄 1주년이 다가오도록 선제적 사과와 청산을 하지 않는지, 여당을 긴장케 하는 대안 세력으로 거듭나려 하지 않는지 이해하려 애써 봐야 소용없다. 그저 그들이 “신들도 두 손 두 발 다 들 정도”로 어리석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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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