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재산처
2025년 10월 1일 지식재산처 출범 계기로 개최된 한-WIPO 고위급 회담. 목성호 지식재산처장 직무대리(왼쪽에서 6번째)가 서울신라호텔(서울 중구)에서 다렌 탕(Daren Tang) WIPO 사무총장(왼쪽에서 5번째)과의 양자회담을 마치고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지식재산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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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재산처가 2025년 10월 1일 본격 출범했다. 1977년 특허청으로 개청한 지 48년 만에 처로 승격해 국가 지식재산 정책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한다.
1977년 특허청 개청 당시 2만5000여 건에 불과하던 특허, 상표, 디자인 등 산업재산권 출원 건수는 2024년 56만여 건으로 증가하며 세계 4위를 기록했다. 2007년부터는 세계 특허출원량의 85%를 차지하는 지식재산 선진 5대 강국(한국, 미국, 중국, 일본, 유럽)의 일원으로 세계 지식재산 규범을 주도하고 있다.
1882년 지석영의 상소에서 시작된 한국의 특허사
우리나라의 특허제도는 1882년 실학자인 지석영 선생이 고종에게 올린 상소문에서 발자취를 찾을 수 있다. 지석영의 상소문에는 “나라가 발전하고 부강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기계를 만들어야 한다. 발명한 자에게 전매특허권을 줘 과학기술을 발전시켜야 하고 서적 저작자에게는 출판권을 줘야 한다”는 구체적인 실행 방안이 담겨 있었다. 오늘날의 특허권과 저작권 도입을 건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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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인 1908년 한국특허령이 공포 시행됐고 통감부 특허국이 설치됐다. 이 시절 한국인 제1호 특허권자인 정인호 선생의 말총모자가 특허등록됐다. 1910년 경술국치 후 한국특허령을 폐지하고 일본의 특허제도를 그대로 한국에 적용했다. 1945년 광복 이후 미군정 시절에는 특허원을 설치해 특허제도를 운영했다. 1948년 정부조직법 시행 이후 상공부 특허국 시대의 특허행정 시대를 열어갔다.
1977년 특허행정 국제화 대응 특허청 개청
1970년대 산업재산권의 중요성이 급격하게 커졌다. 특허출원이 급증하며 전문화, 국제화된 특허행정에 대응하기 위해 1977년 3월 상공부 외국이던 특허국을 특허청으로 개청했다. 1999년 세계 최초로 인터넷 기반의 전자출원 시스템인 특허넷을 개통했다. 전국 어디서나 온라인에서 출원, 등록 서비스가 가능해졌다. 이에 발맞춰 선진 특허행정으로 도약하는 계기를 맞았다. 2010년 특허등록 100만 호, 2019년 특허등록 200만 호를 기록하며 명실상부한 지식재산 강국으로 입지를 다졌다.
2025년 10월 1일 지식재산처 출범
2025년 10월 1일 지식재산처로 승격·출범하며 국가 지식재산 정책 컨트롤타워 역할이 강화됐다. 다양한 형태의 지식재산을 통합·관리해 미래를 선도하는 산업 혁신 기반을 마련하고 지식재산의 창출과 활용, 보호 기능을 종합적으로 수립한다.
지식재산처는 범정부 지식재산 정책의 수립과 총괄·조정 업무를 수행하게 된다. 또한 신설된 지식재산분쟁대응국은 지식재산 분쟁 발생 시 국가 차원의 신속한 대응을 지원한다. 부처별로 분산돼 있는 지식재산 업무를 총괄·조정해 보호 사각지대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고 신규 지식재산에 대한 보호장치도 마련할 예정이다.
지식재산의 창출·활용 및 거래를 담당하는 전담 지원 조직도 마련됐다. R&D를 통해 고품질 지식재산을 확보하고 거래와 사업화를 통해 수익을 창출해 R&D 재투자로 연계되는 ‘지식재산 선순환 생태계’ 조성을 위해서다. 지식재산 관점에서 정부 R&D와 활용 정책이 만들어지도록 부처 간 협업을 강화해 우수 지식재산이 국가 경제의 성장 동력으로 거듭나도록 지원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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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수 기자 ji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