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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없는 사람 있나… 괴로워야 인생이야

입력 | 2025-10-20 03:00:00

현대화랑 ‘노은님 회고전’ 개막
1980∼1990년대 전성기 대작 전시
새-오리-물고기 등 생명 순환 표현



노은님의 작품 ‘두 나무 잎사귀 사람들’(1986년). 현대화랑 제공


“그림의 찢어진 부분은 살아 있다는 증거다. 상처 없는 사람이 어딨나. 괴로워야 인생이다.”

화가 노은님(1946∼2022)은 생전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고 화가를 20년 넘게 가까이서 지켜본 권준성 노은님아카이브 관장은 회고했다. 커다란 한지에 거침없이 그린 그림의 가장자리가 너덜너덜해진 것을 보고 세간에서 ‘그림이 망가졌다’고 비판하자 내놓은 작가의 항변이었다고 한다. 노은님 작가의 1980, 90년대 대작을 볼 수 있는 전시 ‘빨간 새와 함께’가 15일 서울 종로구 현대화랑에서 개막했다.

노 작가는 1970년 독일로 건너가 1973년 국립 함부르크미술대에 입학해 회화를 전공하고, 1979년부터 본격적으로 작가 활동을 시작했다. 1980, 90년대는 그가 가장 활발하게 활동했던 시기다. 전시장에서는 이 무렵 작가가 한국 전시를 위해 독일에서 보냈던 대작들을 수십 년 만에 볼 수 있다. 새와 고양이, 물고기, 호랑이, 오리 등의 소재를 단순하면서도 힘 있게 그려낸 작품들이다.

표제작인 ‘빨간 새와 함께’는 검은 사람이 빨간 새를 끌어안은 모습을 그렸다. 권 관장은 “작품 속 사람도 새도 노은님인, 작가의 자화상 같은 작품”이라며 “새가 사람이고, 사람이 새가 되는 생명의 순환, 불교의 윤회 사상을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노은님’ 하면 사람들이 으레 떠올리는 나뭇잎 같은 물고기를 표현한 ‘큰 물고기 식구들’과 ‘검정고양이’ 등도 볼 수 있다. 전시장에선 독일에서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 ‘내 짐은 내 날개다’(1989년)도 상영된다.

노 작가가 국내에 알려지게 된 계기는 백남준이었다. 1979년 무렵 백남준이 프랑스 파리에 온 박명자 현대화랑 회장에게 “독일에 노은님이라는 그림 잘 그리는 여자가 있다”고 말했고, 이를 계기로 1980년 현대화랑에서 백남준 노은님 2인전 ‘독일 속의 한국 현대미술’이 열렸다. 1984년 노 작가는 백남준, 요제프 보이스와 함께 ‘평화를 위한 비엔날레’에 참여했고, 1990년 함부르크미술대 정교수로 임명됐다. 2019년 독일 미헬슈타트 오덴발트미술관에는 ‘노은님 영구 전시관’이 개설됐다. 권 관장은 “동양의 명상과 서양의 표현주의가 결합했다고 평가받았던 노 작가의 조형미가 재조명되길 바란다”고 했다. 전시는 11월 23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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