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3년 후쿠오카 인근에서 침몰 실종-사망 583명 대부분 조선인 2013년에야 국내서 첫 규명 활동 10년째 추모제, 참석은 열명 남짓… “숨은 유족 있다면 나와달라” 호소
4일 오후 부산 남구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 추모공원에서 열린 ‘곤론마루 침몰사고 추모제’에서 유족 김영자 씨가 헌화하고 있다. 김화영 기자 r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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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같은 유족이 있다면 더 늦기 전에 꼭 연락 부탁드립니다.”
4일 오후 5시경 부산 남구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 추모공원. ‘곤론마루(崑崙丸) 격침 사건’으로 82년 전 아버지를 잃은 김영자 씨(85)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김 씨는 약 10년 전부터 매년 10월 열리는 추모제에 참여해 왔다. 비슷한 처지의 유족이 나타나길 바라지만, 아직 국내에서 확인된 생존 유족은 김 씨 한 사람뿐이다.
이날 추모제는 조촐했다. 김 씨와 그의 딸, 한일 역사 문제에 관심 있는 시민 등 참석자는 10명 남짓이었다. 매년 사용해 온 ‘곤론마루 침몰 추모제’라고 적힌 검은색 플래카드가 내걸렸고, 참가자들은 차례로 하얀 국화를 헌화하며 묵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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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론마루는 일제강점기 부산과 일본 시모노세키를 오가던 정기 여객선이었다. 1943년 10월 5일 오전 1시 15분경 시모노세키를 출항한 배가 후쿠오카 오키노섬 근처 해역에서 침몰했다. 승선자 655명 중 생존자는 일본인 선원 등 72명뿐이었다. 희생자 대부분이 조선인이었으며, 배 하부 승선실에 머물고 있었다. 김 씨의 아버지 김종주 씨는 2등실에 탑승했다가 변을 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 마이니치신문과 아사히신문 등은 사고 발생 이틀 뒤 “곤론마루가 적(미군) 잠수함의 어뢰 공격을 받아 침몰했다”고 보도했다. 당시 태평양전쟁 중 미군이 “이 배에 일본군 2000명이 탑승했다”는 잘못된 정보를 입수해 공격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소장은 “신문에 실린 조난자 명단에는 조선인으로 추정되는 일본식 이름이 많아 가족들조차 사망 사실을 알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곤론마루에는 일본 관공서에 근무하던 조선인 직원과 사업가들이 다수 탑승했다. 김종주 씨 역시 조선과 일본, 중국을 오가며 무역업을 하던 사업가였다. 김 씨는 “4세 때 아버지가 숨진 뒤 가정은 큰 어려움에 처했다”며 “어머니는 일본은행 등에 보관돼 있던 아버지의 자산을 찾을 길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이날 추모제 참가자들은 “더 늦기 전에 김 씨 외의 다른 유족이 나타나길 바란다”고 입을 모았다. 제대로 된 진상 규명과 역사 복원을 위해서는 유족의 증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김 소장은 “시모노세키의 한 절에 곤론마루 침몰 희생자의 무명 유골이 보관돼 있다”며 “유골과 유족의 유전자(DNA)를 대조하면 실제 연관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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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영 기자 r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