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범죄 공포] 캄보디아 석달 갇혔다 탈출 30대男 “피싱 조직 범죄단지 ‘웬치’ 끌려가… 여권-휴대폰 빼앗긴채 범죄 동원 실적 나쁘면 中조직에 팔겠다 협박… 맞아죽은 대학생 사건 빙산의 일각”
지난해 캄보디아 현지 범죄조직에 감금됐다가 탈출한 정민수(가명) 씨가 직접 촬영한 캄보디아 ‘웬치(범죄 단지)’ 내부 사진. 외부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창문에 쇠창살이 설치돼 있다. 독자 제공
‘고수익 아르바이트’라는 홍보에 낚여 캄보디아의 범죄조직에 감금됐다가 가까스로 탈출한 30대 남성 정민수(가명) 씨는 12일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수화기 너머 그의 목소리는 심하게 떨렸다. 최근 대학생 박모 씨(22)가 캄보디아에서 납치·살해되는 등 한국 청년들이 현지에서 변을 당하는 사례가 잇따르는 가운데, 정 씨처럼 다수의 피해자는 ‘고수익을 보장한다’는 유혹에 휩쓸려 범죄에 휘말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개밭’에 갇혀 노예처럼 일해”
광고 로드중
안내에 따라 정 씨가 택시를 타고 도착한 곳은 수도 프놈펜 인근의 한 도시였다. 3m가 넘는 담장 위에는 철조망이 둘러쳐져 있고 무장 경비원 수십 명이 순찰을 돌았다. 이곳이 캄보디아의 ‘웬치’라는 걸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웬치는 동남아 보이스피싱 조직 사이에서 쓰는 은어로 범죄 단지를 뜻한다. ‘단지’를 뜻하는 중국어 위안취(园區)에서 유래했다.
도착하자마자 여권과 휴대폰을 빼앗긴 정 씨는 ‘로맨스 스캠’ 업무에 동원됐다. 여성인 척하며 남성을 유혹해 돈을 빼냈다. 채팅과 음성·영상통화를 직접 맡거나 도왔고, 영상통화에는 딥페이크 기술까지 동원됐다.
식단은 기름기 많은 중국식 반찬뿐이었다. 3.3㎡(약 1평) 남짓한 방에 3명이 몸을 구겨 넣고 잠을 청했다. 숙식비도 모두 빚으로 계산됐다. “나가고 싶으면 나가라. 다만 개밭 비용(숙식비)을 내고 가라”는 협박이 이어졌다.
광고 로드중
● ‘해외 고수익 알바’ 글 넘쳐나… ‘인권은 없다’
극심한 협박과 납치, 감금은 정 씨만의 경험이 아니다. 이달 초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 감금됐다가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의원의 도움으로 풀려난 한 남성은 “정보기술(IT) 관련 업무를 하면 월 800만∼1500만 원의 고수익을 준다. 1인 1실 호텔 숙소와 식사를 제공한다”는 구인 글을 보고 캄보디아로 향했다. 실상의 업무는 보이스피싱이었고, 업무를 거부하자 쇠파이프와 전기충격기를 동원한 구타가 이어졌다. 박 의원 측은 제보를 접하고 외교부 등에 긴급 구조 요청을 했다. 캄보디아 내 한국인 납치 신고 건수는 올해 1∼8월 330건에 달한다.
고수익 알바를 보장한다는 ‘위험한 초대’는 국내 포털 사이트 등을 통해 쉽게 접할 수 있었다. 취재팀이 ‘해외 고수익 알바’를 검색해 한 사이트에 들어가자 수많은 구인 글이 나왔다. 한 게시글에선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서 일을 하면 기본급 290만 원에 인센티브를 포함하면 월평균 1000만∼2500만 원 이상의 매출을 올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 게시글 작성자와 텔레그램으로 직접 연락을 해보니, “보이스피싱 업무를 하면 되고, 한 주당 200만 원은 기본으로 벌 수 있고 열심히 일하는 만큼 돈은 더 벌 수 있다”고 밝혔다.
정 씨는 “최근 사망한 대학생 사건은 빙산의 일각”이라며 “맞아 죽고, 마약 하다 죽는 사람이 상상 이상으로 많다. 웬치 안에 인권은 없다”고 지적했다.
광고 로드중
소설희 기자 facthee@donga.com
전남혁 기자 forwar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