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힘 “11만은 통계적 개연성 높은 정상 수치” 100% 자발적 가입이라면 설득력 있을 수도 문제는 ‘조직적 힘’과 ‘거래’ 개입 흔적 치명적 결함 ‘당원민주주의’ 확 뜯어고쳐야
천광암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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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 특검이 국민의힘 데이터베이스 관리 업체를 압수수색해 통일교 신도로 추정되는 당원 11만 명의 명단을 확보했다. 통일교 압수수색 과정에서 확보한 교인 120만 명 명단과 국민의힘 당원 500만 명의 명부를 대조해 11만 명을 뽑아냈다고 한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의힘이 통일교와 연루되었다는 것이 밝혀지면 국민의힘은 열 번, 백 번 정당 해산을 피하지 못할 것”이라며 공세에 나섰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도 “통일교 11만, 신천지 10만, 전광훈 세력까지 합치면 그 당은 유사종교 집단 교주들에게 지배당한 정당이나 다름없다”고 가세했다.
국민의힘과 통일교 간의 유착 의혹과 관련해서 특검이 주목하고 있는 것은 2023년 전당대회와 2024년 총선이다. 특히 ‘당원 투표 100% 룰’로 치러진 2023년 전당대회 경선을 깊이 들여다보고 있다. 당시 경선에서는 책임당원만 투표권이 있었기 때문에 전체 통일교인 당원 중 몇 명이 책임당원이었는지, 그들 중 몇 명이 실제 투표를 했는지 등이 의혹을 둘러싼 핵심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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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통일교인들이 100% 자발적인 의사로 당원 가입을 했고 가입 시점도 자연스럽게 분산돼 있다면, 통계학을 앞세운 국민의힘의 주장에 설득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당원 가입 과정에 ‘조직적인 힘’과 ‘거래’가 개입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실제로 많은 부분이 특검 수사로 드러난 바다.
특검은 국민의힘 전당대회 넉 달 전 김건희 여사가 건진법사 전성배 씨를 통해 당시 윤영호 통일교 세계본부장에게 ‘통일교인을 당원에 가입시켜 권성동 의원의 당선을 돕도록 요청’해, 윤 전 본부장이 움직인 것으로 보고 있다. 윤 전 본부장과 전 씨 간에 “전당대회에 어느 정도 필요한가” “3개월 이상 당비 납부한 권리당원 1만 명 이상을 동원해 달라”와 같은 구체적 문자메시지가 오간 사실도 확인했다. 이 무렵 통일교가 전국 5개 지구를 통해 각 교회 예배시간 이후 신도들에게 국민의힘 당원 가입서를 나눠주고, 가입 현황을 할당량으로 정리해 윗선에 보고했다는 진술도 확보된 상태다. 다만 통일교가 처음에는 권 의원을 밀었지만, 권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함에 따라 지원 대상을 김기현 의원으로 바꿨다고 특검은 본다.
‘거래’ 흔적도 짙다. 지난달 18일 구속 기소된 윤 전 본부장의 공소장에는, 그가 2022년 3월 윤석열 전 대통령 당선 직후 당시 당선인 사무실로 찾아가 아프리카 및 캄보디아 공적개발원조(ODA) 관련 프로젝트 등 교단의 다양한 현안을 윤 전 대통령에게 청탁한 일이 구체적으로 기재돼 있다. 청탁을 받은 윤 전 대통령이 ‘그와 같은 사항을 논의해 재임 기간에 이룰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로 답했다는 내용도 공소장에 담겨 있다. 이 만남이 있은 지 1주일 뒤 외교부에서 아프리카 ODA를 2배 늘리는 목표가 담긴 국정과제 이행 계획서가 작성됐고, 이후 캄보디아 사업 관련 ODA 예산도 지속적으로 증액됐다.
이처럼 ‘조직적인 힘’과 ‘거래’의 개입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와 정황들이 줄줄이 나온 이상, 국민의힘이 말하는 ‘통계적 개연성’은 정교유착 의혹을 떨쳐 내는 데 충분한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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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검의 수사 결과를 기다릴 것도 없다. 특정 집단이 머릿수를 앞세워 당을 자신들의 편협한 사고나 이해에 가둬놓을 수 있는 ‘사이비 당원 민주주의’ 시스템을 당장 뜯어고쳐야 한다. 대선 패배 후 100일이 넘도록 갈피조차 못 잡고 있는 쇄신 논의도 여기에서 시작해야 한다.
천광암 논설주간 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