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팡이 침대·콩밥에 72명 한방 수용 “케이블타이에 묶이고 머그샷까지 찍혔다” 회사 접촉 전면 차단, 미란다 고지 없이 체포 “사인하면 나가는 줄 알았는데 곧장 구금됐다” “미국은 절대 안 간다” 트라우마 호소
“니하오(你好·중국어로 안녕하세요)”
“Can You Speak English(영어 할 줄 아는가)?”
미국 조지아주 포크스턴의 이민세관단속국(ICE) 시설에 7일간 구금됐던 한 근로자는 현지 요원들로부터 이런 발언을 들었다고 토로했다. 아시아인을 중국인으로 뭉뚱그려 부르거나 언어 능력에 대한 편견을 드러낸 것으로, 인종차별적 발언으로 통한다. 구금자들은 충분한 법적 고지 없이 체포됐고, 곰팡이 핀 침대에서 70여 명이 취침하는 등 열악한 시설에 수용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한 근로자는 “영화에서만 보던 죄수 취급을 당했다”고 했다.
미국 이민세관단속국 ICE(U.S. Immigration and Customs Enforcement)가 조지아주 내 현대자동차그룹과 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의 한국인 직원 300여 명을 기습 단속·구금하는 영상을 공개했다. 2025.9.6 ICE 홈페이지
광고 로드중
한 구금자 측은 “근로자들에게 속옷과 양말은 1개씩만 제공됐었고, 죄수복을 입고 머그샷을 찍었다”고 전했다. 이들은 수용소 같은 시설에서 약 4일을 지낸 뒤에야 2인 1실 방을 배정받았다. 식사도 빵과 통조림 위주로 부실했다. 구금된 LG에너지솔루션 협력업체 근로자 이모 씨(36)는 “밥은 대부분 삶은 콩이었다. 콩만 보면 치가 떨린다”고 전했다. 당뇨병 환자가 약을 제때 지급받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구금 이후 약 3일이 지나자 ICE의 인터뷰가 시작됐다. 체포 및 인터뷰 등 과정에서 미 요원들이 ‘노스 코리아(북한)’ ‘로켓맨(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별명)’ 등 북한인 취급하는 조롱과 “니하오” “영어 할 줄 아나” 고 하는 등 인종차별적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는 증언이 나왔다. 아시아인의 용모를 비하하는 뜻의 눈을 찢는 행위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근로자들은 ‘미국 트라우마’를 호소했다. 이 씨의 가족은 “(구금됐던 가족이) 스트레스 때문에 수면제를 먹고 있다”라며 “차라리 중국 등 다른 나라는 몰라도 미국은 안 가고 싶다고 했다”고 전했다.
미국 조지아주 엘러벨의 현대자동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 합작공장 건설현장에서 미국 이민 당국에 체포·구금됐다가 석방된 한국인 근로자들이 구금된지 8일만인 9월12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광고 로드중
ICE는 체포 당시 통역을 제공하지 않았고, 미란다 원칙도 고지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ICE 요원들은 강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서류를 내밀며 서명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B1 비자를 소지했던 협력업체 직원 한모 씨(31) 가족은 “근로자들이 ‘사인하면 나가는 거다’라고 생각해 서명했는데, 나중에 번역기로 보니 ‘체포 동의서’였다”며 “제대로 된 설명은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ICE가 처음엔 B-1 비자 소지 근로자들의 신분을 확인하고 돌아갔으나, 곧 다른 요원들이 들이닥쳐 강제로 퇴거를 명령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한 근로자는 “절차대로 입국했는데 왜 잡아가느냐”는 질문에 “나도 모르겠고 윗사람들은 불법이라고 본다더라”는 답을 들었다고 전했다.
일부 본사 임직원이 체포 당일 출근하지 않은 것을 두고 ‘단속 사실을 미리 알았던 것 아니냐’는 추측도 일부 근로자 사이에서 나왔다. 이에 대해 한 업계 관계자는 “미 정부가 외국기업에 압수수색한다고 알려 주지 않는다”며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 美 다른 지역 귀국으로 이어져
광고 로드중
천종현 기자 punch@donga.com
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전남혁 기자 forwar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