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국가 해법’ 반대 네타냐후, 팔레스타인 민족 말살 의도
가자지구 가자시티에서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급수 지점에 모여 물을 받고 있다. 뉴시스
민간인 피해율 냉전 종식 이후 최대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가자지구 전체 주택의 92%인 43만6000채가 파괴되거나 손상됐다. 또 모든 상업 시설의 80%와 도로망의 68%가 파괴되거나 훼손됐다. 가자지구 주민 220만여 명 중 90%가 집을 잃은 피란민으로 전락했다. 주민 6만여 명이 사망했고, 14만5000여 명이 다쳤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가자지구 사망자 중 민간인 비율이 83%에 달한다면서 1989년부터 벌어진 각국의 전쟁·분쟁과 비교해 민간인 피해율이 가장 높다고 지적했다. 사망자 중 민간인 비율은 1992∼1995년 보스니아전쟁에서 57%, 시리아 내전에서 29∼34%,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10∼21%,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8∼12%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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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지구는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이후 이스라엘 점령지가 됐다가 1993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간 오슬로 협정에 따라 팔레스타인 자치 지역이 됐다. 전 세계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지역 중 하나인 가자지구의 동쪽과 북쪽은 이스라엘이 설치한 분리장벽에 가로막힌 상태이고, 남쪽은 이집트 국경과 접하고 있다. 서쪽은 지중해와 면하고 있다. 사실상 사방이 모두 막혀 있어 가자지구 주민들은 영토 밖으로 나갈 수 없어 가지지구는 ‘세계 최대의 지붕 없는 감옥’으로 불려왔다. 하마스는 2006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총선에서 PLO의 핵심 세력이자 집권 여당인 파타당을 패배시키며 사실상 가자지구를 통치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 대한 탄압을 대폭 강화했다. 하마스가 팔레스타인 국가 창설을 주장하며 이스라엘의 존재를 부정하고 테러 등 무장투쟁을 감행해왔기 때문이다.
하마스는 지난 2년간 납치한 이스라엘 주민들을 인질 삼아 지하 터널 등에서 지금까지 저항을 계속하고 있다. 인질은 대부분 휴전 등에 대한 대가로 풀려났지만 아직도 50명이 남았고, 이 가운데 20여 명만 생존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스라엘군의 철저한 봉쇄 전략과 소탕작전으로 가자지구 주민들은 상당한 어려움을 겪어왔다. 유엔은 최근 발표한 식량 위기를 평가하는 척도인 통합식량안보단계분류(IPC) 보고서에서 가자지구 주민들의 사망 원인이 공습에서 기아와 영양실조, 질병으로 바뀌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보고서는 주민 3명 중 1명은 온종일 음식을 먹지 못하고 있으며, 다섯 가구 중 한 가구는 극심한 식량 부족 상태라고 밝혔다. 가자지구가 ‘피와 눈물’이 흐르는 지옥이 된 셈이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 지구를 장악하려 하고 있다. 동아DB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의 75%에 대한 작전 통제권을 확보했음에도 8월 20일부터 대규모 군 병력을 동원해 하마스의 최후 보루이자 최대 도시인 가자시티 점령을 위한 작전을 시작했다. 이스라엘 국방부는 ‘기드온의 전차 II’라는 작전명에 따라 총 5개 사단을 투입해 가자시티의 외곽 지역에서부터 단계적으로 작전을 벌일 것이라고 밝혔다. 5개 사단은 보병, 장갑차, 포병, 전투 공병 부대, 전투 지원 부대 등 14개 여단으로 구성됐다. 이스라엘군은 예비군 6만 명에게 단계적으로 소집령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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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군의 가자시티 장악 작전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제시한 ‘가자지구 완전 점령 계획’의 첫 단계로 볼 수 있다. 네타냐후 총리는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요르단 등 아랍 국가들과 유럽연합 등이 제안한 하마스 무장 해제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로의 권력 이양,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수립을 내용으로 한 가자지구 전쟁 출구 전략을 거부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8월 7일 미국 폭스뉴스와 인터뷰에서 하마스를 제거하고 가자지구 전역을 장악하길 원한다고 밝혔다.
이스라엘군은 1967년 3차 중동전쟁 이후 38년 동안 가자지구를 지배했으나 2005년 가자지구에서 완전히 철수했다. 네타냐후 총리의 의도는 다시 가자지구를 자국 영토로 만들려는 것이다. 네타냐후 총리는 ‘두 국가 해법(Two-State Solution)’에도 반대 입장을 보여왔다. ‘두 국가 해법’이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오슬로 협정에 따라 각각 독립된 국가를 세워 평화롭게 공존하자는 것을 뜻한다. 현재 유엔 193개 회원국 중 영국, 프랑스 등 145개국이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하며 두 국가 해법을 지지하고 있다. 하지만 네타냐후 총리는 구약성서에 약속의 땅이라고 언급된 가자지구를 자국 영토라고 본다. 가자지구를 완전 점령해 팔레스타인의 존재를 아예 지워버리려는 것이다.
트럼프 등에 업고 서안 지구 자국 영토 만들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최근 네타냐후 총리를 ‘전쟁영웅’이라고 칭송하는 등 이스라엘의 가자시티 공격 계획을 지지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2월 ‘중동의 리비에라’(지중해 휴양지)로 만들겠다는 ‘가자지구 구상’을 밝혀 격렬한 반발을 산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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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1 지역은 요르단강 서안 지구의 A·B·C구역 가운데 C구역에 속하는데, 이스라엘의 통제 아래에 있다. 이스라엘 정부의 E1 지역 유대인 정착촌 확대 계획은 서안 지구의 북부와 남부를 완전히 갈라놓기 때문에 팔레스타인의 독립국가 수립을 어렵게 할 것이 분명하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서안 지구에 유대인 정착촌이 대거 건설되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두 국가 해법에 대한 희망이 사라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국제사회에선 나치 독일과 아돌프 히틀러의 홀로코스트(Holocaust·유대인 대학살)로 어려움을 겪었던 이스라엘이 ‘21세기판 홀로코스트’로 팔레스타인 민족을 말살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고조되고 있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504호에 실렸습니다〉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