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와 나/이종산 지음/251쪽·1만6800원·래빗홀
나한테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황당해서 아무 생각도 못 할 것 같다. 그런데 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정신을 차리고 ‘예’에 표시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고양이로 변한다. 그래서 ‘고양이와 나’다. 책에는 반려인간이 반려고양이로 변했다든가 친구가 고양이로 변해 버린 황당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폭신폭신한 이야기가 여섯 편 실려 있다. 각각의 이야기들은 화자가 매번 달라지지만 전부 연결된다. 작가는 ‘작가의 말’도 등장인물의 입장에서 캐릭터를 고수하며 썼다. 그러니까 ‘작가의 말’까지 합치면 일곱 편의 이야기가 들어 있는 셈이다.
정보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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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작이자 첫 번째 이야기 ‘고양이와 나’의 화자는 퀴어다. 동성 연인과 함께 살고, 연인을 몹시 사랑하고, 그래서 결혼하고 싶다. 그러나 한국에서 동성혼은 현재 법적으로 불가능하다. 연인이 고양이로 변한 뒤에 ‘나’는 고양이로 변한 사람을 구청에 신고하는 절차를 밟으면서 행정적으로, 공식적으로 연인의 ‘보호자’가 된다. 양쪽 다 사람일 때는 불가능했는데, 한쪽이 고양이로 변한 뒤에야 가능해진다. 한국 사회가 성소수자를 어떻게 제도적으로 차별하는지 되돌아보게 하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고양이와 나’는 투쟁적인 소설이 전혀 아니다. 이 작품은 연인, 친구, 지인이 고양이로 변한다는 설정으로 인간 대 인간의 관계가 짊어지는 기대, 책임, 심지어 외모까지 모든 선입견을 벗겨낸 뒤 관계 자체에 대해 탐구하는 이야기들로 구성돼 있다. ‘고양이와 나’의 화자는 연인이 사람일 때도 사랑하고 고양이로 변한 뒤에도 사랑한다. ‘유진군’과 ‘이름 없는 출판사’에서 주인공들은 자신과 전혀 관계없는 사람이 고양이로 변했기 때문에 연결된다. 새로운 고양이를 돌보게 된 주변 인물들이 바로 그 때문에 서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고양이도 만나고) 삶의 관계들을 확장하는 것이다.
‘고양이와 나’는 관계에 대한 탐구이면서 그런 관계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에 대한 사랑 고백이기도 하다. ‘작가의 말’에서 화자는 동네 책방, 번역가, 출판사 등 책에 관련된 일을 하는 모든 사람에게 이렇게 말한다. “어렵기만 한 세상 속에서 당신들이 지켜온 것들만이 저를 살게 했다고요.”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이것이 이야기가 존재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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