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원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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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청진동의 한 빌딩 3층에는 9년 가까이 비어 있는 사무실이 있다. 2016년 9월 이석수 초대 특별감찰관이 물러난 후 현재까지 공석인 특감 집무실이다. 28명이 일할 수 있는 147평 공간으로 법무부가 매년 임차료 5억 원가량을 내며 유지 중이다.
그런데 적막한 사무실에 조만간 다시 활기가 돌 가능성이 커졌다. 이재명 대통령이 3일 기자회견에서 “가족과 가까운 사람들이 불행을 안 당하도록 예방하는 게 중요하다”며 특감 임명을 지시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한때 청진동 사무실에서 최고 권력자 주변을 감시했던 이 전 특감과 차정현 전 특감 직무대행에게 특감이 제 역할을 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을 물었다.
“중립적 인사 임명하고 신분 보장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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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의 경우 여당, 야당, 대한변협이 후보자를 한 명씩 추천했는데 박근혜 전 대통령은 여당이 추천한 이 전 특감을 택했다. 그는 인사청문회에서 여야의 적격 의견을 받았음에도 임기 초반부터 “허수아비 노릇 하는 것 아니냐”는 야당 공세에 시달려야 했다.
두 번째로 특감과 특감실 직원들의 신분을 실질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특감은 대통령의 배우자 및 4촌 이내 친인척, 대통령실의 수석비서관 이상 공직자를 감찰한다. 살아 있는 권력을 감시하는 만큼 법적으로 신분을 보장하게 돼 있다.
하지만 이 전 특감은 당시 실세였던 우병우 민정수석을 감찰하고 국정농단 사건의 단초가 됐던 미르재단을 내사하면서 권력의 눈 밖에 났다. ‘감찰 내용을 언론에 흘렸다’며 되치기당했고, 결국 임기 절반만 채운 채 떠밀려 나갔다. 남아 있던 차 전 직무대행 등 특감실 직원들에게는 당연퇴직 공문이 날아왔다.
차 전 직무대행에게 당시 상황을 묻자 “현재 공수처 부장검사라 답변이 어렵다. 2년 전 펴낸 책을 참고해 달라”고 했다. 책에서 그는 “특감실은 매일 고립되고 고사되는 중이었다. 전기도 안 들어오는 건물에서 비용을 대납하며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다”고 돌이켰다. 또 “(특감은) 조직이 해체되거나, 부당하게 공격받거나, 직을 잃는 일 없이 조사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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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로 검경과 감사원, 공수처 등 기존 조직과 원활한 협력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특감은 정원 28명으로 검경은 물론 감사원(1128명), 공수처(85명)보다도 규모가 작다.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 권한도 없어 기관 공조가 필수적이지만 대통령 주변을 건드리다 보니 정부 자료를 받는 게 매우 어렵다. 이 전 특감이 우 전 수석 감찰 당시 “경찰에 자료를 달라고 하니 하늘만 보면서 딴소리하더라”라고 하소연한 것도 이 때문이다.
특감 임명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게 아니라 대통령과 국회가 반드시 이행해야 할 법적 의무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특감을 내쳤고 문재인 윤석열 전 대통령은 특감을 임명하지 않았다. 그리고 세 대통령 모두 본인이나 가족이 수사 대상이 됐다.
이 전 특감은 “윤 전 대통령은 김건희 여사를 컨트롤할 자신이 없어 특감에 소극적이었던 것 같다. 문 전 대통령의 경우 임기 초 특감을 임명했다면 퇴임 후 사위의 이스타 특혜 채용 의혹으로 고초를 겪지 않아도 됐을 것”이라며 반복되는 대통령 잔혹사를 안타까워했다. 퇴임 후 본인과 가족의 안위를 위해서라도 대통령 주변을 철저히 단속할 인물을 특감으로 임명하고 활동을 보장할 것을 이 대통령에게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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