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영 오피니언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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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걸어온 길, 지켜온 약속, 그리고 앞으로의 비전을 더 많은 분들과 나누고자 출판기념회를 마련했습니다.”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진행된 6월 25일. 재선 의원 출신 지방자치단체장의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연락처를 갖고 있던 모든 이에게 무차별적으로 뿌린 모양이었다. “책 구매를 원하는 분은 연락 주시면 안내해 드리겠다”면서 친절히 두 개의 연락처도 공지했다.
“권당 5만 원꼴” 무제한 돈봉투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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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후보자의 청문회 발언을 보면 진보, 보수 가릴 것 없이 정치권 전체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구조를 보다 명확히 알 수 있다.
#1. “평균 권당 5만 원 정도 받았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국민 일반 눈으로 봐서는 큰돈이지만 (정치권) 평균으로 봐서는 그다지 과하지 않을 수도 있다.” 출판기념회는 경조사처럼 분류돼 수익금을 선관위에 신고할 의무가 없다. 책값은 1만, 2만 원대이지만 정가를 내는 이는 사실상 없다. 봉투에 5만 원은 기본, 수백만 원도 현금으로 담아 모금함에 넣고 책 한 권을 받는다. 정치인들에겐 관행에 기대 무제한 돈봉투를 합법적으로 받을 수 있는 기회다. 세금 한 푼 내지 않고 억대 재산을 만들 수 있는 이런 세계가 있다.
#2. “출판기념회 자료를 내야 되는데. 낼 수도 있죠. 그러나 저는 한편으로 정치 신인들, 한편으로는 정치 전체에 대한 책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중에 유통도 하지 않는, 목적이 뻔한 책을 내면서 명분은 그럴싸하다. 정치 신인에겐 이름을 알릴 기회이고, 의원들에겐 연간 1억5000만 원 한도의 후원금으로는 의정 활동이 어려워서라고 한다. 김 후보자가 출판기념회 수입 증빙자료를 내지 않으면서 거창하게 ‘책임’ 운운하는 것도 이 명분 덕분이다. 하지만 정치인들은 그 돈으로 빚도 갚고, 생활비로도 쓴다. 출판기념회 수입을 사적 용도로 써도 아무런 제재가 없다.
#3. “야당 의원들, 대표들도 했고 재산 공개나 신고에 반영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있는 상황에서 제가 임의로 출판기념회 비용을 다 공개하는 것이 과연 적당한가.” 그간 출판기념회를 통한 자금 조달 관행을 바꾸려는 시도도 있었다. 그러나 스스로 기득권을 내려놓는 개혁에 선뜻 동의할 의원이 많지 않아 번번이 좌절됐다. 이를 잘 아는 정치 인생 30년 차 김 후보자가 ‘내가 까면 너도 피 볼 텐데’ 하는 조폭 집단 같은 위협을 하는 것이다.
이번에는 반드시, 응답하라 정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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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국민의힘 의원들이 관련 법안을 잇달아 발의하고 있다. 김 후보자 인준을 반대하려는 정치적인 동기로 시작했다 해도 폄하하고 싶지 않다. 먼저 특권을 내려놓고 법안을 관철해 낸다면 ‘국민 밉상’ 국민의힘이 모든 국민의 박수를 받을 일이다. 또 소수 야당이 거여(巨與)를 어떻게 견인할 것인가 실마리를 찾을 길이기도 하다.
홍수영 오피니언팀장 gae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