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격다짐 거듭하다 무너진 尹 경제개혁 野는 반대 위한 반대 하다 정책 ‘오버런’ 트럼프발 경제위기, 정책전환 계기 제공 대선 전 경제 망칠 정책·공약 철회해야
박중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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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전 대통령이 3년을 못 채우고 파면되면서 그의 경제개혁 정책도 먼지처럼 흩어지게 됐다. 유일하게 성사된 국민연금 모수(母數)개혁도 탄핵소추 기간에 여야 합의로 이뤄졌다. 국가 개조를 위한 깊은 철학도, 치밀한 실행 전략도 없이 개혁 과제에 발을 들였고, 여소야대 정국 속에서 벽에 부딪칠 때마다 움찔하며 물러선 게 다다. 미완(未完)이라 부르기에도 민망한 윤 정부 경제개혁의 성적표다.
민간 주도, 건전 재정, 세제 정상화, 부동산 규제 완화 등 윤 정부의 우파 정책과 날을 세우며 대결해온 더불어민주당의 정책 기조는 그사이 심하게 왼쪽으로 ‘오버런’했다. 윤 전 대통령 등이 거부권을 행사할 때마다 ‘얼마나 버티나 보자’ 식으로 더 센 법안을 재차, 삼차 밀어붙이다가 그렇게 됐다. ‘이재명의 민주당’이 171석 다수 의석의 힘으로 추진한 법안 중에는 같은 당이 집권했던 문재인 정부도 부작용이 우려돼 섣불리 시도하지 못한 것들이 태반이다.
지난주 헌법재판소의 8 대 0 탄핵 결정으로 대통령이 물러나고, 국민의힘은 여당 지위를 상실했지만 극한 대결 구도 속에서 굳은살이 박인 민주당의 정책 기조는 고스란히 남았다.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와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이 그렇고, 불법 파업 노조원에 대해 회사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노란봉투법’이 그렇다. 주택 공급 확대를 위한 재건축 규제 완화, 첨단산업 경쟁력 제고를 위한 주 52시간제 예외 인정에 반대하는 것도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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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급변하는 국내외 경제 환경은 정부·여당 공격용으로 특화된 민주당, 이 대표의 정책들이 내포한 위험성을 더 키우거나, 사실상 실행이 불가능한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민주당이 행정, 입법을 동시에 장악할 경우 걸림돌이 사라질 상법 개정이 대표적이다. 최근 미국 정부는 한국에 25%의 상호관세를 물리면서 그 이유로 외국 기업인에 대한 한국의 과도한 형사처벌 관행을 ‘비관세 장벽’의 사례로 꼽았다.
이사회 결정이 마음에 안 드는 주주가 마음껏 배임죄 소송을 제기할 수 있게 하는 상법 개정은 국내에 진출한 외국 기업에도 적용된다. 다른 선진국에 없는 ‘갈라파고스 입법’이란 점에서 미국 정부가 문제 삼는 비관세 장벽의 조건에 부합한다. 민주당 주도로 만들어졌고, 안전관리 소홀로 사망사건이 발생한 기업의 최고경영자(CEO) 등에게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 벌금’을 물리는 중대재해처벌법에 외국 기업들이 불만을 제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더욱이 날로 격화하는 글로벌 관세전쟁은 향후 몇 년간 한국 경제의 엔진인 수출기업을 위축시키고, 그로 인해 세수도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2023, 24년 2년간 한국의 세수는 이미 90조 원 펑크였다. 국민 1인당 100만 원씩 나눠주는 데 연간 50조∼60조 원이 필요한 기본소득을 실행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앞뒤 가리지 않고 강행한다면 재정적자 확대 우려로 국가신용등급이 강등된 중국이나 프랑스, 무리한 복지 지출 탓에 화폐가치가 폭락 중인 인도네시아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다.
역설적으로 트럼프 정부가 초래하는 글로벌 경제위기는 정쟁의 부산물로 생겨난 정책들을 민주당과 이 대표가 바로잡고, 지지층을 설득하기에 좋은 기회다. 향후 수년간 한국의 대미 수출 기업들은 고관세를 물면서 이익 축소를 감수하거나, 한국을 떠나 미국 땅에 공장을 지어야 한다. ‘초부자 감세’란 민주당의 주장에 따라 법인세율을 낮춰주지 않아도, 많은 기업들이 버는 게 없어 세금을 제대로 못 내는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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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