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를 영화로 읊다] 〈101〉 버닝
불태운다는 메타포를 활용한 한시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당시 중에선 태워도 태워도 들풀처럼 다시 돋아나는 이별의 슬픔을 포착한 백거이의 시가 유명하다.(‘賦得古原草送別’) 당나라에서 활동한 최치원(崔致遠·857∼?)이 들불을 보며 떠올린 것은 백거이와는 사뭇 다른 국면이었다.
들불은 세상의 부조리를 태워버리고 싶은 마음과 어쩌면 자신마저 희생양이 되어 그 불길에 함께 휩쓸릴까를 두려워하는 마음의 길항일지 모른다. 이것은 산불을 통해 권력자의 전횡 및 부화뇌동한 무리를 비꼰 한유의 시(‘陸渾山火和皇甫湜用其韻’)를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또 다른 종류의 확장된 메타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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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버닝’에서 어린 종수는 불타는 비닐하우스를 바라보며 두려움과 동시에 환희를 느낀다. CGV 아트하우스 제공
한시에서 사용된 들판을 태운다는 메타포도 그렇다. 시를 곱씹어 보면 주저하고 망설이기도 하지만 부조리한 세상을 불태워 버리고 싶은 시인의 내면을 만날 수 있다. 시인은 어린 시절 고국을 떠나 당나라에서 나름의 성공을 거두었지만, 당나라와 신라 어느 곳에서도 불우를 벗어나지 못했다. 시인의 삶과 선택에 관한 수많은 이야기가 전하지만, 우리는 이 시가 보여주는 그의 마음속 분노와 두려움에 대해선 충분히 알지 못한다.
임준철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